저축 늘리기 위해 경기 희생|「4-18 금리조정」의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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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제정책이 회귀곡선을 긋고 있다.
이른바 「3저시대」로부터의 방향전환이다.
저금리· 저물가· 저배당 등 저자로 대표되던 「안정」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 몇 년간 안정정책에 몰두하다보니 뒤틀릴 수밖에 없었던 문제점들을 이제 직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의 환율정책이 그렇고 더욱 가깝게는 18일의 파격적인 금리조정이 그렇다.
3저 시대의 개막을 알린 지난 82년의 6·28 금리인하 이후 벌써 3번째의 궤도수정이다. 직접 금리체계에 손을 대지 않고 이른바 「새 금융상품」개발이라는 편법으로 길을 뚫었던 것까지 합치면 정부는 지난 3년간 적어도 5번 이상 찔끔찔끔 금리를 꾸준히 인상해온 셈이다.
84년의 1·23, 11·5 금리 차등폭 확대가 바로 직접적인 금리인상이었었고 지난해와 올해 초에 각각 등장한 양도성예금증서(CD), 가계금전신탁 등의 고수익 금융상품도 실질적인 금리인상이었다.
이번 금리조정도 그간의 궤도수정과 마찬가지로 저금리의 심각한 부작용을 치유하기 위한 조처다.
기왕 손댈 바에야 빠를수록 더욱 좋았던 것이었는데 그간 당국의「체면」때문에 미루어져왔던 것이다. 경기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하강추세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 금리손질은 정책적으로 「실기」 라는 꼬리표까지 따라붙게 되었다.
현행 금리체계의 갖가지 문제점 중에서도 가장 화급했던 것이 바로 제2 금융권의 이상 비대 현상이었다.
은행저축이 안 늘고 단자보험 등을 중심으로 한 제2 금융권의 여·수신이 급속히 불어나는, 금융의 주종 전도현상은 최근 국제 그룹의 분해 과정에서 보듯 몹시 불안한 금융의 난기류를 이루어 놓았고 나아가 은행창구를 쥐어 잡는 식의 총통화(M2) 중심 통화관리정책 자체가 그 뜻을 잃어버리게됐다.
쉽게 말해 은행을 키워놓지 않고는 제2 금융권을 통해 오가는 단기고리의 자금흐름을 다스려 잡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제2 금융권이 안방을 차지하게 되면 통화정책을 제대로 하기 힘들게 되는 것이다.
지난 한해 동안의 통화공급패턴은 말할 것도 없고 올 들어 지난 3월말까지만 보더라도 은행에서 풀린 돈은 87%밖에 늘지 않았는데도(총유동성 기준 1년전 비) 은행 아닌 쪽에서 나간 돈은 무려 36·1%나 늘어났다.
당국이 지난해 금리인상의 편법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양도성 예금증서를 도입하고 올해 가계금전신탁을 신설하는 등 은행저축의 유인책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갈수록 당국의 의도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진작 금리체계 자체에 과감히 손을 대는 것이 옳았음에도 총통화증가율 목표에 지나치게 경직적으로 집착하고, 새 금융상품개발이라는 체면치레의 편법에 기대왔던 정책의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또 외채 많은 나라에서 좀처럼 은행의 장기저축이 늘지 않고, 부실기업 문제가 발등의 불인 마당에 은행수지에 계속 주름살이 잡히는 등의 부작용도 몹시 심각한 중증이었다.
뒤늦게나마 금리체계에 손을 대는 것이 어쩔 수 없다 해도 여전히 그 나름대로 새로운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계금전신탁· 양도성예금증서· 어음관리구좌(CMA) 등의 조건 좋은 고수익 금융상품이 즐비한 판에 이 같은 금리조정이 은행저축을 늘리는데 어느 정도 기여할지 의문이다.
또 장기시설자금을 은행이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투자 촉진의 유인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있으나 은행금리를 인상하면 제2 금융권이 뒤따라 금리를 올리는 속성을 감안할 때 이번 금리인상은 업계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 틀림없다.
은행 금리 인상 분만큼 추가부담은 말할 것도 없고 은행들이 넉넉히 돈을 못 대주어 제2 금융권에 의존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업계는 이번 금리인상에 중압을 느끼고있다. <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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