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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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엔베르·호자」(Enver Hoxha)알바니아 노동당 제일 서기가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언제적「호자」인가』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섹계에서 가장 오래 집권해온 공산국가 지도자의 말로에 대한 연민이다.
그가 유럽의 남동부 발칸반도에 있는 2백50만 인구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1943년부터다. 알바니아 공산당 (48년부터는 알바니아노동당)의 서기장이 된 이후 무려 42년이 지났다.
그와 엇비슷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장기집권자는 이 섹계에 오로지 북한의 김일성만이 남아 있다.
김은 지금 40년째 집권하고 있다. 스페인의 프랑코는 38년간 집권하고 74년에 은퇴 75년에 죽었으며, 포르투갈의 「살라자르」는 36년간 집권했다.
그러고 보면 「호자」와 김일성은 무자비한 스탈린주의자로 똑같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호자」가 그의 회고록에서 김을 「공산주의 배반자」로 규정한건 흥미롭다.
중소는 오직 자기 국가 이익만 추구하는데, 그 두나라에 줄타기 외교를 하는 김은 기회주의자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호자」의 특징은 약소국 알바니아의 주권을 꿋꿋이 지키며 외세에 굴복하지 않고 용케 견뎌왔다는 점이다.
그는 이웃나라 유고의 간섭을 배제했다.
2차대전중 이탈리아에 점령된 알바니아의 독립을 위해 유고의 도움은 불가피했다. 전후복구를 위해 예사의 반을 유고의 지원으로 감당해야 했다.
그 유고도 「호자」를 「우익적 프티 부르좌적 편향자」혹은 「민족주의적 편향자」로 규정, 자아비판을 강요한바 있다.
실제 그는 중산계급에서 태어나 프랑스와 벨기에에 유학한 공산국가지도자증 이색적 경럭의 소유자다. 때문에 그의 실각은 한때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48년 유고가 코민포름에서 추방될때 선두에서 유고를 비난함으로써 위기를 넘겼다. 여세를몰아 「조제」등 정적을 유고의 스파이로 몰아 처형했다.
그는 소련의 압력도 극복했다.
「흐루시초프」는 알바니아를 방문하면서까지 「호자」를 회유하며 유고와의 관계개선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는 58년 유고의 수정주의를 가장 혹독히 비판했다. 60년에 중소논쟁이 일면서 중공편을 든것도 그였다. 그때문에 소련의 혹독한 정치 경제적 보복을 견뎌야했다.
그러나 71년 미 중소접근에 따라 그는 중공과도 결렬해야 했다. 78년에 중공의 경제 군사원조마저 중단된 것은 물론이다. 「호자」는 세계에 보기드문 「고독」의 길을 선택했다. 「참된 마르크스주의나라」를 건설한다는 그의 고집은 알만한 것이다.
그 때문에 알바니아가 가난한 후진국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하지만 「개인소유의 차가 한대도 없는 나라라는 철저한 면때문에 정권이 유지됐다는 관측도 있다.
어떻든 「호자」의 죽음은 장기집권 독재자의 퇴장과 한 시대의 종말을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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