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선관위가 ‘빼앗은’ 남양주 유권자 7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전익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기사 이미지

전익진
사회부문 기자

아침잠을 줄여가며 가장 먼저 투표장에 나갔는데 투표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지 못했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이런 일이 13일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해밀초등학교에 마련된 제15투표소에서 벌어졌다.

이날 오전 6시 투표장에는 바지런한 유권자 30여 명이 길게 줄을 섰다. 순서에 따라 맨 먼저 온 유권자부터 7명이 투표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따로 찍어야 하니 유권자에게는 투표용지 2장씩 지급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지역구 후보를 고르는 투표용지 한 장씩만 지급됐다. 이 때문에 비례대표 후보를 찍지 못해 유권자 7명은 ‘절반의 투표’만 한 셈이 됐다. 투표장에는 남양주시청 공무원 4명, 교육직 공무원 2명, 일반인 등 투표 사무 관련자들이 11명이나 있었지만 아무도 문제를 곧바로 인식하거나 제기하지 않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유권자 7명이 투표를 마치고 자리를 뜬 뒤에야 투표 관리관과 사무원이 뒤늦게 파악했다. 남양주시 선거관리위원회 측은 “이른 아침이라 투표 사무원이 정신이 없어 실수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사 이미지

13일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사거리에 선관위가 설치한 투표 독려 현수막이 걸려 있다. [남양주=전익진 기자]

더 한심한 행태는 사후 수습 단계에서 벌어졌다. 이날 오후 6시가 투표 마감이기 때문에 오후에라도 추가로 비례대표 투표를 할 시간이 충분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법적으로도 유권자의 신원이 확인돼 비례대표 투표를 요구하면 추가로 투표가 가능하다. 하지만 폐쇄회로TV(CCTV) 등을 통해 7명의 유권자가 비례대표 투표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끝내 무산됐다. 무책임과 무능을 동시에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선관위가 유권자의 소중한 7표를 빼앗은 셈이다. 이번 총선 유권자의 한 표를 돈으로 환산하면 1인당 3700만원이다. <본지 4월 13일자 1면>

20대 국회 임기인 2017~2020년 정부 예산 1548조원(올해 예산 387조원X4년) 중 유권자의 몫(1548조원÷유권자 4210만 명)을 계산한 것이다. 7명을 합치면 2억5900만원이 날아간 셈이다. 물론 선관위의 실수로 투표권을 박탈당한 만큼 7명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한번 사라진 권리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남양주시 진접읍에 사는 시민은 “선관위가 유명 연예인을 동원해 투표 독려 캠페인에는 신경을 썼지만 정작 투표소 사무원에 대한 철저한 교육과 예행연습에 소홀히 해 큰 허점을 드러냈다”고 질타했다.

이날 투표장 주변에는 선관위가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설레게 하는 아름다운 선택’이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유권자들을 실망시킨 선관위의 실수’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전익진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