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홈 개막전에서 눈물 보인 오티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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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보스턴-볼티모어전이 열린 12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펜웨이 파크. 그라운드 위에 서 있던 데이비드 오티스(41·보스턴)는 경기 전 국가를 부를 사람이 소개되자 모자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자신의 딸 알렉산드라(15)였기 때문이다. 오티스는 노래가 끝나자 딸을 힘껏 안았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그의 눈가는 촉촉했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올시즌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그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다.

오티스는 보스턴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다. 2003년 보스턴 이적 후 31홈런을 친 오티스는 이듬해 41개를 때려내며 중심타자로 자리잡았다. 포스트시즌에서도 맹타를 휘두르면서 그해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이끌었다. 1920년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로 보낸 뒤 우승하지 못했던 '밤비노의 저주'를 깨트린 것이다. 보스턴은 2007년에도 우승했다.

오티스는 과거 금지약물 양성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이 2009년 공개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는 꾸준한 기량과 리더십으로 보스턴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 이후 열린 첫 경기에서는 "여기는 우리의 도시(This is our fxxxking ciity)"라고 외치기도 했다. 보스턴은 그해에도 우승을 차지하며 시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오티스는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야구장을 떠난다. 보스턴과 2017년까지 계약한 오티스는 지난해 11월 데릭 지터가 만든 웹사이트 '플레이어스 트리뷴'에 동영상을 올려 은퇴를 선언했다. 오티스는 "2016시즌이 마지막이다. 내 인생의 다음 장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은퇴 뒤 사람들에게 항상 최선을 다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보스턴은 오티스의 마지막 홈 개막전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 오티스 몰래 알렉산드라에게 국가를 부탁한 것이다. 오티스는 "놀랐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만들었다"고 감동했다. 알렉산드라는 "아버지가 '다시는 그렇게 놀래키지 말라'고 했다"며 즐거워했다.

구단의 배려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티스는 NBA(미국프로농구) 보스턴 셀틱스(NBA)의 빌 러셀,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 보스턴 브루인스의 보비 오어, NFL(미국프로풋볼)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타이 로와 함께 시구자로도 나섰다. 세 명 모두 보스턴을 연고지로 한 프로 구단들의 전설로 오티스를 그들 못지 않은 스타로 대우했다.

오티스는 올 시즌에도 뛰어난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개막 2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낸 그는 이날 경기에서도 펜웨이의 상징인 그린 몬스터(왼쪽 외야에 설치된 큰 담장)를 2번이나 맞혔다. 올시즌 개막 후 5경기에 거둔 성적은 타율 0.318·2홈런·6타점이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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