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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갈수록 힘세지는 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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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종권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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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권
사회부문 기자

대한노인회 산하 충북 제천시지회 김모(73) 회장이 선거기간에 금품을 돌린 혐의(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로 10일 검찰에 넘겨졌다. 지난 2월 26일 5대 1의 경쟁을 뚫고 회장에 당선된 지 두 달도 안 된 시점이다. 김 회장은 유권자 10여 명에게 1인당 현금 10만~20만원을 돌린 혐의로 최근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아 왔다.

앞서 대구의 한 노인회에서도 지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잡음이 있었다. 낙선한 후보 A씨가 당선자 B씨의 사전선거운동, 금품 및 향응 제공 의혹을 제기했다. 법원이 최근 업무정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지만 법정 공방까지 가는 심한 갈등을 드러냈다.

노인회장에게 어떤 권한과 이권이 있기에 정치판 같은 금품선거가 난무할까.

제천시 노인회의 경우 읍·면·동에 18개 분회가 있고 65세 이상 노인 1만4000여 명이 회원이다. 노인회는 연간 회비 1만원씩을 받아 324개 경로당을 관리한다. 노인회장은 직원 임명, 자문위원 위촉 등 인사권뿐 아니라 회비 관리 운용권, 물품 구매 허가권도 갖고 있다. 노인회는 노인대학을 운영하고 게이트볼 대회를 개최한다. 이를 위해 연간 30억여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는다. 제천시 예산 지원을 받아 차량도 구입했다.

제천시 노인회 전임 회장은 “명예직이던 노인회장 권한이 많아지면서 자리에 욕심내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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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경찰 관계자는 “제천시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지역 노인회를 둘러싼 불법행위가 적지 않은데 노인들과 관련된 문제라 쉬쉬한다”며 지역의 온정주의를 꼬집었다.

노인회는 전국 17개 시·도 연합회와 244개 시·군·구 지회가 있고 회원은 300여만 명이나 된다. 노인회가 관여하는 경로당 수는 전국에 6만4000여 곳이다.

노인회는 아동지킴이 사업, 노인 일자리 창출사업 과정에서 대상자 선정 권한을 갖고 있다. 일부 노인회는 복지시설 위탁 경영권도 행사한다. 수십억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가는 노인회관을 지을 때나 노인 관련 행사 때 노인회가 협조하지 않으면 일이 안 된다. 이 때문에 지자체는 노인복지 관련 사업이 늘면서 노인회장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구조다. 고령화로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13%(660만 명)로 커지면서 덩달아 노인회장의 권한도 막강해지고 있다. 특히 대선·총선 후보들에게 노인회는 압력단체다.

노인은 공경받아야 하지만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노인회를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방치하면 문제가 생긴다.

경찰 관계자는 “선관위가 관여하는 농협조합장 선거처럼 투명한 선거 제도를 마련하고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노인회 예산 집행을 꼼꼼히 감사해 일탈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고 대책을 제안했다.

최종권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