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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병원에 보내달라"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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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해경258주감=김재봉 기자】28일 중공어뢰정과 승무원들을 인계한 북위36도, 동경124도 서해공해상은 1·5∼2m의 파고가 있었으나 인수인계는 시종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중공 함정들은 함포의 앞머리를 낮추고 포신을 커버로 모두 덮고 있었는데 해군관계자는 『도발의사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
인수인계 작업이 3시간여 진행되는 동안에도 중공군함들은 우리 해군함정을 향해 발광 신호와 깃발신호등으로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기쁨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라는등 인사를 여섯번이나 보내왔다.
한국해군과 중공해군이 바다에서 만난것은 3백여년만의 일.
제정러시아가 동진해 오던 17세기 당시 위협을 느낀 청나라가 우리측에 원군을 요청, 신류장군이 이끄는 1천명의 군사가 만주 흑룡강까지 배를 타고 원정을 가 청나라 군대와 함께 러시아군대와 대결했던게 한·중공두나라 해군의 마지막 만남이었다고 해군충북함 작전장교가 설명.
이번 난동사건의 주모자로 알려진 사신립(20·통신사)과 왕중영(19·항해사)은 이날 인수인계과정에서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숨진 승무원 시체6구가 실렸던 중공어뢰정에 우리측 호송관계자 6명이타고 있었던 점으로 미뤄 두와왕은 어뢰정 갑판밑에 보호를 받으며 어뢰정과 같이 중공측에 인계된것으로 보인다.
중공측 인수단이 대표로 서명을 한 중공북해함대 참모장 주홍희는 계급장을 달지않는 중공군의 전통대로계급장을 달고 나오지 않았으나 해군관계자들은 우리의 준장에 해당하는 주요직책이라고.
이날 인수단으로 나온 중공해군장병들은 짙은 청록색상·하의에 검은 단화를 신은 정장이었으며 모자는 둥글고 큰 데에 가장자리를 흰끈으로 둘러친 것을 쓰고 있었다.
얼핏보아 판문점에 나오는 북괴군 병사들의 복장과 비슷했으며 모자 앞 중앙에는 붉은 별 1개씩을 붙이고 있었다.
해경 경비함 사관실에 마련된 인수인계서 서명장 테이블에는 사인펜과 솔담배·흰장갑·메모지·비스킷등이 접시에 담겨 놓여 있었으며 우리측이 영문으로 작성한 인계문서를 내놓자 중공대표 주홍희는 인계서내용과 승무원명단을 확인한후 미소를 지으며 인계문서 밑에 「중화인민공화국 해군북해함대 참모장주홍희」라고 서명했다.
주는 서명에 앞서 『한국정부의 호의에 감사한다. 우리 승무원이 체한중 귀국이 베풀어 준 후대를 고맙게 생각한다』『표류 어뢰정을 예인하고 다시 예인해온 한국의 해군(해경을 뜻함)에 감사한다』『양국 선박의 계류작업중 귀국의 함정이 파손된데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등 인사말을 했다.
중공인수단은 인수서에 서명이 끝난 직후 김광우 해경 경비함장에게 선물이라면서 칭타오(청도)맥주 24개들이15상자, 미미사주 (포도주 일종) 5상자, 쌍마표담배 6백갑, 마오타이주 25병을 주었고 승무원들이 묵었던 호텔과 병원, 그리고 어뢰정을 구조해준 어성호에 전해달라면서 고량주 20병, 미미사주4상자, 맥주10상자, 담배 5백갑을 따로 내놓았다.
이날 통역으로 따라온 구해빈은 한국말이 유창한데다 생긴 모습도 흡사 한국인같아 한국말을 어디서 배웠느냐고 묻자 『한국인이 많이 살고있는 길림성 유화현에서 배웠다』고 대답했으나 『부모가운데 한사람이 한국사람이 아니냐』는 물음에는 웃음으로 대답을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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