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준에게 주식 판 사람도 전 넥슨 임원 …‘쿠션거래’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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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체 넥슨의 비상장주식을 거래해 10년 만에 120억원대 대박을 터뜨린 이른바 ‘진경준(49)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검사장)의 주식 대박 사건’ 등장인물들의 퍼즐이 거의 맞춰졌다. 2005년 진 본부장에게 넥슨의 주식을 판 사람이 넥슨 미국지사장을 지낸 이모(54)씨였던 것으로 7일 드러나면서다. 진 본부장에게 주식을 판 사람과 주식을 사라고 권유한 사람이 모두 넥슨 전 임원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비상장주식의 거래에 김정주(48) NXC 대표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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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진 본부장은 2005년 당시 외국계 컨설팅회사에 근무하던 박성준(48) 전 NXC 감사의 소개로 박 전 감사, 김상헌(53) 네이버 대표와 함께 넥슨의 주식을 사서 보유했다. 3만 주를 갖고 있던 이씨로부터 이들 세 명은 각각 주당 4만원에 1만 주씩을 샀으며 이후 넥슨재팬 주식과의 교환과 2011년 말 넥슨의 일본 증시 상장 직전 액면분할 등을 통해 85만3700주(0.23%)씩을 보유하게 됐다는 것이다.

IT업계 “2000년대 초·중반에는
임직원 통해 차명주식 거래하기도”
김정주 대표가 관리한 주식 의혹
넥슨 주식 양도할 땐 이사회 승인
김 대표가 거래 몰랐을 리 없을 것”

앞서 진 본부장은 지난달 31일 공식 해명을 통해 “2005년 넥슨이 비상장사일 때 외국계 컨설팅 업체에서 일하던 친구가 지인(일반인)에게서 ‘이민을 가게 돼 주식을 팔고 싶다’는 말을 듣고 주식 매입을 제안해 친구들과 함께 사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씨는 1997년 넥슨이 미국지사를 설립하면서 지사장을 맡아 2000년대 초까지 재직했다. 2004년 이 회사가 철수한 뒤엔 미국에 계속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진 본부장의 해명과 일치한다. 실제로 이씨가 보유하던 주식을 팔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이씨를 통해 따로 관리하고 있던 주식을 진 본부장 등에게 넘긴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IT 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초·중반에는 IT 업체들 사이에서 회사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임직원 등을 통해 차명 주식을 보유하면서 이를 돈이 필요할 때 파는 소위 ‘쿠션(Cushion) 거래’를 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씨가 팔았다는 물량이 김 대표 소유가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2005년 넥슨은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 등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이 회사의 주식을 사려고 해도 매물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넥슨의 법인 등기에는 ‘회사 주식을 양도할 때는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사회 승인 사안이라면 김 대표가 몰랐을 리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진 본부장 스스로가 “주식을 산 시기가 2005년 상반기”라고 밝힌 바 있어 넥슨의 일본 증시 상장에 대한 법률적 논의를 김 대표와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진 본부장이 넥슨의 내부 정보를 이용했거나 상장 준비를 위한 모종의 도움을 줬을 것이라는 의혹이다. 실제 김 대표는 그해 10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넥슨의 해외증시 상장 가능성을 처음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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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당 4만원이라는 매입 가격이 적정했는지도 의문이다. 2005년도 넥슨의 감사보고서에 나타난 순자산을 주식의 수로 나눠보면 주당 가치는 6만3065원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실제 시중에서는 주당 10만원 이상에 거래가 성사되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한편 법무부는 진 본부장이 제출한 사표 수리를 계속 보류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조사 후 수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공직자윤리위의 조사가 더 신속히 진행될 전망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곧 입장을 밝히겠다”던 넥슨은 “공직자윤리위에서 자료를 요청할 경우 적극적으로 응하겠다”며 입장 표명을 미뤘다.

문병주·장혁진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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