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내가 ‘테슬라3’ 예약주문을 포기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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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선
경제부문 기자

난생 처음 진지하게 자동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도 살 수 있게 된 ‘테슬라 모델3’ 때문이다. 홀린 듯 테슬라 홈페이지를 찾아 이름·성·국가를 넣고 지갑에서 신용카드까지 꺼냈다. 다행히 주문 직전 제정신이 돌아왔다. ‘난 대체 무엇에 홀려 2018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물건에 무려 1000달러(115만원)의 예약금을 걸겠다고 나선 것인가’.

구매 의욕에 불을 지른 것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모터스 최고경영자(CEO)의 트위터 멘션이다. 우주 여행 대중화에 나선 지구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의 CEO가 비록 사이버 상이지만 참 성실히도 네티즌들의 질문에 답했다. 그가 답변하는 걸 따라가다 보니, 모든 의문이 대체로 해소되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마저 드는 것 아닌가. 가령 이런 식이다. ‘일론 머스크, 모델3 트렁크는 크게 만들어 주세요’ ‘네, 그럴 것입니다’ . 8000만원대 테슬라의 전작 모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3만5000 달러·약 4050만원)에 상당한 정부 보조금(1200만~1500만원)이 주어질 수도 있다는 정보, 환경에 부담이 되지 않는 차를 굴리는 개념 소비자가 될 절호의 기회. “어머낫, 이건 사야해!”

머스크의 프레젠테이션에 매료된 구매자가 한국에도 제법 되는 모양이다. 주요 포털엔 ‘테슬라3’ 예비 구매자 모임이 며칠 새 여럿 등장했다. 얼리 어답터들이 앞다투어 주문을 알렸고, 네티즌들은 예약 인증과 주문 방법을 소개하느라 바빴다.

문제는 모델3가 아무리 혁신적이라고 한들, 몇 년 뒤 한국 에서 전기차 충전은 여전히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가 테슬라 모델3에 국산 전기차와 동일한 전기차 보조금을 줄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지난해 말 만들어졌다고만 알려진 테슬라 한국법인은 미동도 없다. 전기차 충전 계획이 있기는 한지, 협의 단계인지, 한국 소비자에 차량이 인도되기까지 어떤 절차를 거치게 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창구가 없다.

게다가 현재는 아무도 모델3의 도전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자신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예약 주문이 27만 대까지 들어왔다는데, 생산을 어디서 하는 지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미국 전문지들이 ‘당신이 모델3를 사야할 이유 5’, ‘모델3가 테슬라를 위험에 빠지게 할 이유 5’과 같은 엇갈린 전망을 번갈아가며 올리고 있는 이유다. 일단 그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당분간은 나 역시 차를 사겠다는 생각을 접고 지하철을 탈 수 밖에 없게 됐다.

전영선 경제부문 기자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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