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트럼프, 위스콘신 완패…멀어진 공화 후보 매직 넘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국 공화당의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철옹성이 5일(현지시간) 무너졌다. 이날 위스콘신주 경선에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48%를 득표해 35%를 얻은 트럼프를 제치고 승리했다. 민주당에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승리하며 민주당 경선은 오는 6월까지 승부가 계속되는 장기전이 불가피해졌다. 승리한 크루즈 의원은 “오늘 밤이 전환점”이라고 선언했고 패배한 트럼프는 “꼭두각시만도 못한 크루즈는 나의 공화당 후보 지명을 훔치려는 당 보스들의 트로이 목마”라고 분노를 쏟아냈다.

낙태 처벌, 한·일 핵 허용 발언 구설
공화 반트럼프 진영 일제히 비토
저학력·저소득층 표 이탈 치명적

이날 경선은 트럼프 대 반(反)트럼프라는 첫 정면 승부에서 트럼프가 참패했다는 점에서 공화당 경선 판도의 급변을 예고한다. 경선을 앞두고 공화당 주류인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는 크루즈 지지를 선언했고, 바닥 민심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 내 6개 보수 라디오 방송 진행자들은 일제히 트럼프 비토에 나섰다. 반트럼프를 기치로 만들어진 ‘우리의 원칙’이라는 단체는 트럼프 비난 광고비로 200만 달러(23억원)를 풀었다.

기사 이미지

특히 트럼프로선 충성층이었던 저학력·저소득층이 이탈한 게 치명적이다. CNN 출구조사 결과 대졸자(트럼프 33% 대 크루즈 46%)만 아니라 고졸 이하(트럼프 39% 대 크루즈 45%) 응답자층에서도 트럼프가 밀렸다. 연소득 10만∼20만 달러의 고소득층(트럼프 31% 대 크루즈 54%)은 물론 3만∼5만 달러의 저소득층(트럼프 40% 대 크루즈 43%)에서도 트럼프는 졌다.

이 같은 완패를 야기한 장본인은 트럼프다. 경선을 앞두고 트럼프는 낙태 여성에 대한 처벌을 주장했다가 보수 진영의 여성단체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허용하겠다는 폭탄 발언은 통수권자로서의 자격 미달 논란을 자초했다. 그동안 멕시코 불법이민자는 성폭행범, 무슬림 입국 전면 금지, 집권하면 국경 잠정 폐쇄 등을 쏟아내며 입으로 일어섰던 트럼프였지만 이번엔 처음으로 입 때문에 무너지는 위기를 맞았다. WP는 “(패배의) 책임을 돌릴 대상은 트럼프”라고 보도했다.

위스콘신 패배는 트럼프에게 향후 더욱 심각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려면 대의원 과반수인 ‘매직 넘버’ 1237명을 확보해야 한다. 트럼프는 그간 736명을 얻었는데 위스콘신에서 3명을 추가하는 데 그쳐 과반을 넘길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다고 CNN은 보도했다. 이 경우 공화당은 1948년 이후 68년 만에 처음으로 중재 전당대회를 열어 후보를 확정한다. 오는 7월 중재 전당대회에서 1차 투표 때 과반을 넘는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2차 투표부터는 ‘트럼프 대의원’의 족쇄가 풀리기 시작한다. 의무적으로 트럼프를 찍어야 했던 이들도 자유롭게 다른 후보를 선택할 수 있다. 공화당 지도부는 중재 전당대회를 통해 트럼프가 아닌 다른 인사를 후보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일각에선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 제3의 후보가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관련 기사
① 힐러리 “노조 강화” 트럼프 “보호무역”…좌우 양극단으로 치닫는 경제공약
② NYT “트럼프 발 이렇게 걸어라”…CNN “혐오에 투표 말라”
③ 트럼프 부인 반라 사진까지…막가는 미 대선



◆민주당 경선에선 샌더스 승리=민주당에선 샌더스 의원이 지난달 22일 이후 7개 주에서 진행된 경선 중 6곳을 싹쓸이하며 클린턴 전 장관을 위협하고 있다. 샌더스 의원은 3월 1일 수퍼 화요일 경선, 3월 15일 미니 수퍼 화요일 경선 등 큰 승부에서는 패했지만 이후 백인 노동자층이 많은 중부·북부에선 연승을 이어 가며 경선 동력을 오히려 키웠다. 현재로선 클린턴 대세론을 뒤집기는 어렵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대체적인 관측이지만 그럼에도 오는 19일 대의원 291명이 걸려 있는 뉴욕주 경선이 빅이벤트로 부상하고 있다. 뉴욕주가 상원의원 시절 지역구였던 클린턴 전 장관이나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샌더스 의원 모두 이곳에서 지면 상처를 입는다.

특히 클린턴 전 장관으로선 뉴욕 패배는 텃밭이 무너지는 격이라 자칫하면 자신을 지지해 온 상·하원 의원과 당 지도부, 민주당 당직자 등 수퍼 대의원들이 심적으로 동요하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