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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대북정책, 양 극단을 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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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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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이후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알파고 열풍과 국회의원 선거 이슈가 부각되면서 북한 문제는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북한’이란 단어를 입력하고 검색 포털에서 검색한 결과 3월은 2월에 비해 뉴스 건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내 국회의원 ‘공천’이란 단어의 뉴스 검색 건수는 ‘북한’의 두 배에 달했다. 여당·야당의 선거 공약과 비례대표 공천에도 북한 이슈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있는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선거 공약에 북한 관련 정책은 아예 나오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약 마지막에 대북정책을 제시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핵실험 이전 버전을 조금 손질한 정도 같다. 한국 정당이 북한 문제를 잊어버렸다면 그 망각 속도는 알파고의 연산 속도만큼이나 빠르다. 한반도의 사활이 걸려 있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정당의 직무유기다.

중국이 실제 어느 정도로 북한을 제재할지도 불확실하다. 유엔 안보리 제재의 효과에 대한 언론 보도 건수를 KOTRA가 제공하는 자료와 구글 검색을 통해 살펴보면 73%는 제재 효과가 있는 것으로, 27%는 없는 것으로 나왔다. 5일 중국 상무부의 고시는 석탄 수입을 원칙적으로 금하되 중국의 기업 책임자가 민생용임을 밝히는 서약서를 제출, 심사 받으면 가능할 수도 있게 했다. 데일리NK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보더라도 제재 이후 북한 물가는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다. 아직 제재 국면 초기라서 지금은 판단하기 이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경제제재란 “언덕을 오르면서 치르는 전투(uphill battle)”다. 자원을 결집하고 집중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제1차 세계대전부터 2000년까지 174건의 제재 효과를 분석한 허프바워(Hufbauer) 등의 연구에 따르면 부분적으로라도 제재가 성공한 확률은 34% 정도이며 적성 독재국가에 대한 제재는 효과를 거두기 한결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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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점에서의 대북정책은 두 가지 극단의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첫째는 무조건 대화하자는 극단이다. 제재는 어차피 효과가 없을 테니 지금이라도 북한과 대화해 문제를 풀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번 제재마저 효과가 없다면 김정은이 대화에 진정성 있는 태도로 나오려 할까. 북한이 계속 핵 능력 고도화를 하고 있는 지금, 아무 일 없는 듯이 다시 옛날 버전의 햇볕정책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대화의 결과 남북 교류의 문이 열리면 어떻게 북핵 문제를 풀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 없이 그냥 대화하자는 주장은 김정은을 역사상 유례없는 선한 독재자로 착각하는 것이다.

다른 극단은 이 기회에 북한을 붕괴시키자는 주장이다. 북핵 문제는 통일 없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므로 북한 붕괴를 우리 정책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경제제재로 적성국의 체제를 붕괴시킨 사례는 없다. 소련이 붕괴된 이유가 미국의 경제제재와 군비경쟁 때문이라는 주장은 미국 네오콘의 선전에 불과하다. 제재로 소련이 겪은 경제적 비용은 크지 않으며 소련 말기의 군비지출은 그 전에 비해 GDP의 1~2% 증가에 그쳤다. 사회주의 독재국은 그 내부의 동학에 의해 붕괴할 뿐 외국의 제재와 압박이 미치는 직접적 효과는 미미하다. 효과가 있더라도 이는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지극히 완만한 과정이다. 더욱이 지금 북한이 붕괴한다면 우리 사회의 역량과 경제력으로 그 충격을 감당하기 어렵다.

북한 붕괴론이 나오는 배경에는 제재의 효과를 과장함으로써 제재 지지 여론을 강화하려는 동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위험한 생각이다. 제재 효과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이 높을수록 정치적 경로의존성이 커진다. 이는 북한을 붕괴시키기 전에는 어떤 대화도 하지 말자는 자기 피해적인 경직성으로 발전할 수 있다. 허프바워 등도 “씹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입에 넣지 말라”, 즉 제재 목표를 지나치게 높이지 말라고 조언한다. 우리 정부는 제재에 대한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제재는 가하기보다 적기에 풀기가 더 어렵다.

올 7, 8월께 그동안의 북·중 무역액과 시장물가의 변화를 보면 대북제재의 성공 여부를 알 수 있다. 이때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중간 성적표도 같이 나올 것이다.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제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강화하고 전문가 위원회 구성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특사를 임명해 통일 문제와 대북제재에 대해 중국과 밀접히 소통할 뿐만 아니라 중국이 한국인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동북아 평화는 이루기 어렵다는 점도 알릴 필요가 있다. 국민도 이번 선거에서 북한 문제를 잘 다룰 정당과 정치인을 염두에 두고 투표해야 한다. 북한만큼 우리 한반도의 미래에 중요한 문제가 있겠는가.

김병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