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산지 35원이 서울선 1,500원|본사 기자 운송 트럭 동승 취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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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동해안에서 35원 짜리 명태 한 마리가 서울에서는 최고 1천5백원으로 둔갑하고 있다.
어부들의 손을 떠난 지 24시간도 채 못되어 명태 값이 이처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은 복잡한 유통과정과 중간 상들의 가격 담합· 사재기(사입)·뒷거래 등 구조적인 유통상의 부조리가 없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
이 때문에 산지의 가격은 10년 전과 맞먹는 바닥시세로 떨어져 어부들은 출어 경비조차 건지지 못한다고 푸념이지만 대도시의 소비자 값은 좀체 내리기 않고 있다.
지난 15일 주문진에서의 명태 위판 가격은 30마리들이 한 상자(25∼35cm 기준)에 1천50원. 바로 이것이 l6일 서울·광주·대전·청주 등지에서는 마리 당 최하 2백50원에서 최고 1천5백원에까지 팔리고 있어 최하 7배에서 최고 40배까지 춤추고 있음을 확인했다.
명태가 생산자∼산지 위판장∼중개인∼도시 위판장∼중개인∼도매상∼소매상을 거쳐 소비자에게까지 이르는 8단계의 유통과정을 중앙일보 기자가 운송트럭에 동승, 추적했다.
◇산지∼도매상=지난 14일 상오 7시 주문진 항 Y수산물상회. 주인과 직원 2명이 2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전화기 2대로 전국의 수산시장 중개인들로부터 시세파악에 바쁘다.
1시간 가량 파악한 명태 위판 값은 30마리 상자 당 서울이 1천8백원, 대전 2천2백원, 광주와 청주가 2천 원 선. 이날 주문진의 위판 가격은 1천50원.
『오늘은 남쪽 물이 좋군. 남쪽으로 뛰지』 대전·청주·광주서 주문 받은 물량은 7백50상자. 이중 명태는 6백30상자.
하오 4시. 적재작업이 끝나고 운송장이 운전사 김 모씨(34)에게 건네지자 4·5t 복서트럭은 출발했다.
첫 의문은 운송장에서 생겼다. 어종 별로 물량만 적혔을 뿐 금액란(내정가)은 빈칸.
현지 중개인들이 공식 수수료 외에 수입을 올리는 중간마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편법이라는 김씨의 조심스런 대답. 내정가는 미리 전화로 주고받았다는 것.
수취인은 청주가 수협 공판장, 대전과 광주가 각각 박모씨 앞.
『대전· 광주는 사입같은데』
운전사 김씨는 「사입」이 무슨 말이냐는 질문에 수산상회를 겸한 중개인들이 냉동창고를 확보, 정상적인 위탁량 외에 별도로 물량을 사두었다가 값이 좋을 때 내다 파는 일종의 생선 사재기라고 웃는다.
중개인은 위탁자로부터 3∼5%의 수수료를 받고 중개만 할 뿐 도매행위는 못하도록 돼있지만 이를 겸함으로써 「꿩 먹고 알 먹는 것」이라는 설명.
하오 10시 55분. 원주에서 국도를 거쳐 청주시 사직1동 수협 공판장에 도착, 명태 1백30상자를 부렸다.
이날 청주 수협공판의 경락가는 한 상자에 2천 원선. 중개인들이 상자 당 5백원의 마진을 붙여 도매상에 넘긴다는 숙직자 김명선씨(29)의 설명이다. 김씨의 말대로라 해도 현지 중개인은 산지 중개인으로부터 받는 위탁 중개료(5%·1백원) 외에 5백원의 수입을 올린다는 얘기.
운송장의 금액란을 빈칸으로 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15일 0시 20분 대전시 삼성동 수산청과시장에 도착, 수탁 중개인 박모씨(45)의 총무 강모씨(34)가 명태 2백 상자와 다른 생선 등 2백35상자를 받았다.
이날 대전의 경락가는 상자당 2천6백94원. 위판 중개수수료 2백64원 외에 마진 7백80원을 더 붙인 셈.
상오 4시 30분, 주문진을 떠난 지 꼬박 12시간 30분만에 4백92km 떨어진 최종 목적지인 광주시 양동 수산시장에 도착했다. 이곳의 판매는 입찰이 아닌 전량 수의판매로 중개인들이 각자 위탁물을 개별 판매했다.
수산시장 정찬흥 상무(51)는 『위탁 요구액(내정가)이 높아 적정가격 유지를 위해 회사와 화주 (산지 중개인)·현지 중개인 합의로 수의판매를 하는 것』이라고 알듯 모를 듯한 설명. 이날 경락가격은 상자 당 1천9백40원. 당초 전화로 주고받은 내정가보다 60원이 적은 셈. 이는 산지에 비해 상자 당 7백48원이 많지만 대전· 청주에 비하면 5백60∼7백54원이 낮아 수송거리는 멀면서 값은 오히려 싼 모순을 나타냈다.
◇도매상∼소비자=명태 값이 본격적으로 「폭등」의 위세를 보이는 것은 도시 도매상을 거치면서부터.
산지에서 30마리씩 담은 한 상자가 지역에 따라 25마리·20마리·10마리로 줄기도 하고 명태 크기에 따라 대·중·소로 나뉜다. 값도 천차만별.
서울의 경우「가다」고기로 통하는 대태(35㎝ 이상)만을 골라 10마리 한 상자에 노량진 수산시장 도매상에서 소매상으로 넘겨지는 도매가격이 8천 원선. 여기에 2천(대치동) ∼7천원(반포동· 압구정동)의 소매마진이 붙어 소비자들에게는 한 마리에 1천∼1천5백원에 팔린다.
인천에서 도매로 물건을 공급받는 경기도 부천에서는 중간치와 큰 것을 섞어 30마리 상자에 도매가격이 8천 원.
4천원의 소매마진을 붙여 소비자들에게 판다. 대태의 경우는 20마리 상자 기준으로 도매가격이 7천 원, 소매가격이 1만원으로 마리 당 5백원 꼴.
결국 산지에서 대· 소의 구분 없이 담은 상자가 대·중·소로 나뉘어지고 값도 최하 2백50원에서 1천 원, 지역에 따라서는 1천5백 원까지. 명태 값은 어물 유통의 복마전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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