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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달라"는 부탁에 연인 살해한 '촉탁살인' 남성, 국민참여 재판서 징역 5년 선고

중앙일보

입력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것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그런 부탁을 들어줬는지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연인으로부터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고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오모(38)씨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재판에서 반성문을 읽어 내려갔다.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오씨는 가슴 깊이 범행을 반성했지만, 5년간 징역을 살며 죗값을 치르게 됐다.

서울 동부지법 형사12부(부장 이동욱)는 여자친구 이모(사망 당시 39세ㆍ여)씨를 촉탁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오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7명은 모두 유죄 판단을 내렸다.

오씨는 지난 2013년 인터넷에서 알게된 이씨와 연인관계로 지내왔다. 그러나 두 사람의 행복은 길지 않았다. 사기로 돈을 모두 날린 이씨는 오씨에게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을 호소했고, 신병을 비관해 수차례 죽음을 암시하는 얘기를 했다. 이씨에게는 2명의 자녀도 있었다.

결국 이씨는 지난해 12월 16일 서울 강동구에 있는 원룸에서 술을 마시던 중 오씨에게 유서를 보여주며 “죽여달라”고 부탁했고, 오씨는 1시간가량 설득했지만 끝내 이씨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이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당시 이씨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이후 오씨는 여자친구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공중전화로 119에 전화해 “내가 연인을 죽였다”고 신고한 뒤 인근 오피스텔 건물에서 투신하려 수차례 시도했다. 그러나 두려움 끝에 투신을 포기했고, 범행 12시간여 만에 주변을 수색하던 경찰에 체포됐다.

사건을 넘겨 받은 검찰은 오씨가 이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살해한 것을 감안해 오씨에게 촉탁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촉탁살인에 대한 형량은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로, 사형이나 무기 또는 징역 5년 이상인 살인에 비해 처벌이 가볍다.

검찰은 재판에서도 오씨의 안타까운 사연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그러나 “피고인의 안타까운 사정은 고려하되 절대 동정에 치우쳐선 안된다”며 오씨에 대해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오씨 역시 범행 일체에 대해 모두 인정했다. 오씨는 재판장에서 A4용지 5장 분량의 반성문을 읽으며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여자친구가) 그런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제가 좀 더 성숙했더라면 같이 사는 걸 선택했어야 하는데, 너무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 모든 게 저의 잘못이다. 순간 잘못된 선택을 해서 이런 일을 저질렀다. 반성문을 써서 그때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매일 수백, 수천장의 반성문을 썼을 것”이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7명 역시 오씨에 대해 전원 유죄 판단을 내렸다. 5명은 징역 5년, 2명은 징역 6년의 의견을 냈다.

법원은 배심원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다수의견에 따라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촉탁이 있었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절대적 가치가 있다는 점, 적극적인 만류나 설득이 없었던 점, 피해자 유족과의 합의가 없는 점, 피해자의 남겨진 두 자녀의 상실감과 고통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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