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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항공 공중 납치 "상사병 난 로미오 소행?"

중앙일보

입력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출발해 수도 카이로로 향하던 이집트항공 여객기가 공중 납치됐다. 승객과 승무원 등 81명이 탄 이집트항공 소속 에어버스 320 여객기(편명 MS181)가 납치범 1명에 의해 29일 납치돼 키프로스 라르나카 공항에 비상 착륙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공중 납치는 여객기가 이날 오전 6시37분 알렉산드리아 공항을 이륙한 직후 발생했다. 자살 폭탄 조끼를 입고 있다고 주장한 납치범은 기장에게 키프로스 착륙을 요구해 8시7분 키프로스 라르나카 공항에 착륙했다고 영국 스카이뉴스가 전했다. 납치범이 "여성과 아이는 나가도 좋다"고 말해 3명의 승객과 4명의 승무원 등 7명을 제외한 탑승자들은 풀려났다.

키프로스 공항에 착륙한 뒤 납치범은 키프로스 정부에 정치적 망명과 통역을 요구했다. 그는 키프로스 공항 인근에 거주하는 자신의 전처에게 아랍어로 쓰인 편지 4장을 전해달라는 요구도 했다. 키프로스 언론은 "전처가 키프로스에 거주하고 있다는 개인적 동기 때문에 납치범이 키프로스 착륙을 요구한 걸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이집트 외교부는 "이번 사건은 테러리스트의 소행이 아니다"면서 "테러리스트는 미친 인간들이긴 해도 (이번 납치범처럼) 바보(idiot)는 아니다"고 발표했다.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 키프로스 대통령은 "이번 여객기 납치는 모두 여성과 관계된 일"이라고 확인했다. 가디언 현지 기자는 트위터에 "납치 배후에는 상사병이 난 로미오가 있었다"고 적었다.

이번 여객기 납치 사건으로 이집트의 고질적 공항 보안에 다시 경고등이 켜졌다. 이집트는 지난해 10월 31일 자국 상공에서 항공기가 폭발하는 악몽을 겪었다. 러시아 메트로제트 소속 에어버스 A-321 여객기가 이집트 샤름 엘셰이크 공항을 이륙한 지 20여분 만에 시나이 반도 상공에서 폭발해 탑승자 224명 전원이 숨진 사고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 국가(IS)는 사고 직후 자신들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조사 결과 여객기 좌석 아래 폭발물이 설치돼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외신들은 "만약 이번 여객기 납치범이 폭탄을 숨긴 채 탑승했다면, 이집트 공항의 보안검색이 얼마나 허술한지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다"고 지적했다.

AP통신은 지난해 10월 여객기 추락사고가 일어났을 당시 샤름 엘셰이크 공항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뒷돈으로 받고 마약과 무기로 채워진 가방을 검색대에서 통과시켜 줬다고 보도했다. 공항 보안 담당자들이 받은 뒷돈은 10유로(1만2000원) 가량이었다.

5개월여만에 다시 항공기 관련 사고가 벌어진 이집트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집트 경제에서 중요한 관광업이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이집트 시나이반도 상공에서 러시아 여객기가 추락해 전원이 숨진 이후 이집트를 찾는 관광객들이 발길이 줄고 있다.

이집트 국내총생산(GDP)에서 관광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14.8%에 달한다. 히샴 자조우 이집트 관광장관이 발표한 2015년 이집트 관광업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이집트 관광업은 20년래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다. 지난해 10월 러시아 여객기 추락 사고 이후 이집트 관광산업 매출은 예년에 비해 매달 2억8300만 달러(3400억원) 줄었다.

여객기 추락 이후 휴양지로 유명한 이집트 해안 지역을 찾는 관광객은 50% 줄었다. 지난해 이집트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930만 명으로 전년보다 6% 감소했다. 지난해 이집트 정부 예산 중 61억 달러가 관광업을 통해 충당됐는데 이는 2014년보다 15% 줄어든 수치다.

홍주희·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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