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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저학년 돌봄 도맡고, 기업은 정시퇴근 보장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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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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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경기도 성남시 장안초등학교에서 학생 27명이 참여해 오케스트라 방과후학교 수업을 했다. 이 학교에선 돌봄교실과 방과후학교가 상호 보완적으로 운영되면서 직장맘들의 만족도가 높다. [성남=김상선 기자]

17일 오후 3시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장안초등학교엔 아이들로 북적댔다. 수업이 끝났는데도 전교생 730명 중 400여 명이 남아 있었다. 2층 교실에서 요리수업이 한창이다. 15명(주로 1~3학년)이 황은영 강사의 설명에 따라 밀가루와 코코아·베이킹파우더를 섞어 컵에 부었다. 2학년 유채린 양은 가루를 살짝 맛보고 “맛있다”고 웃었다. 2학년 염유리양은 요리·북토킹·미술 3개의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을 듣고 돌봄교실을 오가다 오후 5시쯤 집에 간다.

학교·기업 협력 ‘돌봄 절벽’ 없애야
프로그램 좋으면 사교육비도 줄어
교사 대기자, 특성화 교육 투입을
지역 내 비영리단체도 활용할 만

이 학교는 150여 개(2014년 전국 학교당 평균 34.3개)의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음악·축구 등을 배우다 중간중간에 돌봄교실에 들러 쉬거나 숙제를 한다. 아이들이 오후 5~6시까지 학교에 머문다. 직장맘 염혜선(40)씨는 “월 5만원으로 오케스트라 수업을 받는데, 이런 데가 없다. 프로그램 선택의 폭이 넓고 질이 좋은 데다 학교 안에서 이뤄지니 믿고 맡긴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저학년(1~3학년) 학부모는 방과 후 아이가 학교에 있는 것을 선호한다. 학교 밖이 불안해서다. 하지만 방과후돌봄 여건은 열악하다. 돌봄교실 한 학급당 3000만원의 예산이 나온다. 돌봄전담사 월급과 운영비를 이걸로 충당해야 한다. 질이 따르지 못하니 부모가 외면한다. 경기도 하남시 돌봄교실은 방학 때 점심으로 분식집 메뉴 다섯 가지를 돌아가며 내놓다가 학부모들의 반발을 샀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보육 쏠림’ 때문이다. 지난해 보육에 10조7897억원이 지원된 반면 방과후돌봄에는 7974억원이 들어갔다. 이 중 돌봄교실에는 3515억원(나머지는 지역아동센터 등)만 지원된다. 분당 장안초등학교는 부족한 돈을 기업 기부로 채운다. 또 학부모가 적극 참여해 프로그램·교재·강사 등을 결정한다.

방과후돌봄이 잘 되면 사교육비도 줄어든다. 장안초등학교 송근후 교장은 “학생당 사교육비가 4년 전 47만원에서 지난해 15만원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질이 좋은 데는 대기자가 많다. 육아정책연구소 권미경 정책연구실장은 “초등학교가 방과후돌봄을 책임지고 기업이 저학년 학부모의 정시퇴근을 보장하는 게 정답”이라며 “학교-기업 두 바퀴가 맞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 금융사에서 중소기업으로 옮긴 홍승희(36·여)씨의 예가 이를 입증한다. 홍씨는 “전 직장에서는 눈치 보여 육아휴직도 제대로 못 썼는데 지금은 유연근무제가 잘 돼 있어 출퇴근 시간을 조절하며 애들을 챙긴다.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화대책기획단 이삼식 단장은 “교육부나 학교가 방과후돌봄을 ‘보육’ 영역으로 보고 소홀히 하는데 이제는 ‘연장 교육’으로 봐야 한다”며 “교사 임용 대기자를 활용해 방과후 특성화 교육에 적극 나서고, 부모가 오후 5~7시에 정시 퇴근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육아연구소 권 실장은 “지역사회 내 비영리단체(NPO)가 방과후돌봄을 지원하는 것도 대안”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그렇게 한다. 핀란드 헬싱키시 알란 하사리 유아교육 전문가는 “프리스쿨 학생에게 학교에서 점심을 제공한 뒤 같은 건물이나 인근 건물의 데이케어 반으로 옮겨 놀이 중심의 교육을 한다”고 말했다. 핀란드 초등학교 1, 2학년은 사회복지사가 돌봄과 과제 보조를 맡는다.

◆특별취재팀=신성식·김기찬·박수련·이에스더·김민상·황수연·정종훈·노진호 기자, 이지현(서울여대 국문4) 인턴기자 ssshin@joongang.co.kr
◆공동취재=한국보건사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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