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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의 차이 나는 차이나] 중국 “감비아와 국교 복원”…대만 외교 고사작전 재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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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선거에 이겨 국가 정상에 취임하는 순간 여행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제한당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대만이다. 취임을 2개월 앞둔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당선자는 지난해 야당 당수 자격으로 미국과 일본을 방문했지만 앞으로 총통으로서의 공식 방문은 불가능하다. 대만이 회원국으로 참가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그가 국가 정상으로서의 의전을 받으며 갈 수 있는 나라는 국교를 유지하고 있는 22개국뿐이다.

‘독립파’ 차이잉원 취임 앞두고
8년간의 외교휴전 깨는 신호탄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그 가운데 과테말라와 벨리즈를 골라 임기 중 마지막 순방에 나섰다. “한가하게 졸업여행을 떠난 것 아니냐”는 눈총도 있었지만, 경제적 실속이 동반되는 중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마다하고 신의를 지켜준 나라들을 찾아가 감사를 표시하며 결속을 다지는 것은 대만 총통으로선 중요한 업무다.

마 총통을 격분시킨 건 지난 16일 방문국 벨리즈로 날아든 급보였다. “중국이 내일(17일) 감비아와 국교를 복원한다고 통보해 왔다”는 보고였다. 2008년 자신이 취임한 이래 중국과 대만 사이에 유지돼 온 8년간의 ‘외교휴전’을 깨겠다는 통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언론에 따르면 마 총통은 “하필 이런 때…”라며 화를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중국은 일부러 마 총통의 외유 시기를 골라 효과의 극대화를 노렸을 수 있다.

더 많은 나라와 국교를 맺기 위한 양안 간 외교쟁탈전은 동서 냉전기에 치열했다. 서방 진영에 속한 대만이 수교국에서 6대 4의 비율로 우세했으나 1971년 대만의 유엔 축출, 즉 중국의 유엔 가입과 함께 66(중국)대 54(대만)로 역전됐다. 양안 외교전은 일본(72년)·미국(79년)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국교를 맺으면서 승부가 났지만, 한 나라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한 쟁탈전은 2000년대까지 계속됐다.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정권에 대한 압박에 나선 중국은 대만 수교국 29개국 가운데 6개국을 중국 편으로 빼오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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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휴전에 들어간 건 2008년 국민당의 재집권과 함께였다. 마 총통이 ‘92 공식(共識)’ 즉, ‘하나의 중국’이란 대원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대만의 외교적 숨통을 죄는 일을 중단했다. 감비아와의 국교 회복을 2년 이상 머뭇거린 것도 외교 휴전의 일환이었다. 감비아는 대만(68년)에서 중국(74년)으로, 그러다 21년 만에 또 대만(95년)으로 갈아타며 그때마다 경제적 실리를 챙겨온 전력이 있다.

그러다 2013년 다시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의 복교를 요청했으나 이번엔 중국이 거절했다. 인구 190만 명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00달러(약 58만원)에 불과해 평소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을 일이 거의 없는 서아프리카 소국 감비아와의 복교를 2년 이상 묵혀두다 필요한 순간 대만 차기 정권에 대한 외교 압박 카드로 활용한 것이다.

문제는 감비아가 끝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천이신(陳一新) 대만 단장(淡江)대 교수는 “이번 복교는 시작에 불과하며 파라과이·파나마·니카라과 등 최소 5개국이 중국과 수교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찬룽(金燦榮)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지난해 3월 국제회의에서 만난 파나마 대통령이 대만 선거에서 민진당이 승리하면 곧 중국과 수교할 테니 외교당국에 우리 입장을 전달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고 밝혔다.

감비아와의 복교는 중국이 대만에 대한 외교적 고사(枯死) 작전에 돌입할 수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을 쏜 것과 같다. 그 신호탄 속에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라는 메시지를 실어 보냈다. 그 메시지에 대한 차이 당선자의 해답은 5월 20일로 예정된 총통 취임 연설에서 나온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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