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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판지 공기청정기 개발, 1000개 기부한 김광일…버린 침대가 새 책상 변신, 예술 나눔 실천 정선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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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친환경 전자제품 ‘CAC’ 대표
디자인 거품 빼 값 크게 낮춰
반지하·쪽방 등 소외층에 보급 

못사는 사람들에게도 깨끗한 공기는 필요하죠. 골판지로 공기청정기를 만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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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 대표는 “필요하지만 비싸서 못 사는 일이 없도록 거품을 뺀 제품이 많아야 우리 사회가 밝아진다”고 말했다. [사진 김상선 기자]

지난 9일 김광일(42) CAC 대표가 본인이 개발한 골판지 공기청정기를 손수 조립해 보였다. “10분이면 누구나 만들 수 있어요. 성능은 수십만원짜리 제품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표시선에 따라 골판지를 접고 그 안에 공기 필터와 지름 20㎝가량의 작은 펜을 끼워 넣었다. 플라스틱 나사로 이음새를 손으로 몇 번 조이니 탁상용 스탠드만 한 크기의 공기청정기가 뚝딱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기청정기를 김 대표는 ‘S전자’ 제품이라고 부른다. “셀프(self)전자라는 뜻이에요. 누구나 쉽게 손수 만들 수 있다는 얘기죠.” 그는 “디자인의 거품을 뺐기 때문에 가격을 확 낮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차량에 사용되는 기존의 고효율(99.5%) 공기필터를 제품에 사용하되 청정기 외관을 종이로 감쌌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이렇게 만든 골판지 공기청정기를 단돈 4만4000원에 팔고 있다. 피자 박스만 한 포장에 부품과 조립설명서를 넣어 판매한다. 소비자가 직접 조립해야 하기 때문에 만드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공기청정기를 누군가에게 기부하겠다고 하면 마진을 빼고 3만4000원 원가로 판다. 지난 1년간 김 대표는 이런 방식으로 1000여 개의 공기청정기를 반지하·쪽방 등 저소득 소외층에 기부했다.

그가 골판지 공기청정기를 만들어 팔게 된 배경은 뭘까. “2년 전 미세먼지가 이슈가 되면서 공기청정기를 사려고 알아봤습니다.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몇 백만원씩 하더군요. 선뜻 돈 주고 사기가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죠.” 김 대표는 2014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반 시게루의 건축물 사진을 꺼냈다.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종이로 임시주택을 만들었어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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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는 대형마트에서 박스를 가져다 공기청정기를 만들었다. 손수 만든 공기청정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자기도 만들어 달라는 지인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100여 개의 공기청정기를 직접 만들어주고 지난해 1월에는 아예 CAC라는 회사를 차렸다. 골판지를 이용해 전기제품을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다. “꼭 필요하지만 비싸서 못 사는 사람들을 위해 저렴한 제품을 만들자는 취집니다.” 김 대표는 그렇게 선풍기·제습기·정수기 등을 차례로 개발했다. 그리고 모든 제품의 제작법을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공유했다.

김 대표는 단순히 제품만 팔지 않는다. ‘골판지 공기청정기 만드는 법’ 등을 무료로 강의한다. 지난해에는 인천 지역 초·중학교 20곳 1100여 명에게 골판지 전기제품 등을 소재로 한 기술체험 교육을 재능기부했다. 김 대표의 다음 목표는 골판지로 만든 드론과 로봇을 개발하는 일이다. 김 대표는 “골판지 공기청정기처럼 삶에 꼭 필요하면서도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앞으로도 많이 만들겠다”고 말했다.

재활용 목공방 이끄는 미술가
시민과 함께 폐가구 리디자인
저소득층 어린이 등에게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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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주 작가가 버려진 목재로 재탄생시킨 작품들. 그는 “가구에 담긴 이야기까지 살려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버려진 박스로 공기청정기를 만들기 시작했던 김 대표처럼 정선주(46) 작가는 6년째 폐목재를 재활용해 새로운 가구를 만들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 종암동 성북예술창작센터 옥상에 위치한 그의 공방은 온갖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했다. 오래된 나무 빨래판과 도마부터 침대·책장·테이블에서 뜯어낸 조각들까지 다양했다. 형태와 색깔이 제각각인 재료들은 그의 작업대를 거쳐 은은한 파스텔 톤을 띤 수납장과 테이블, 책상 등으로 다시 태어난다.

낡고 색이 바랜 나무들이지만 조금만 만져주면 훌륭한 목재가 돼요. 리폼이 아닌 완벽한 재탄생이죠.”

그가 처음 폐목재를 활용한 가구 디자인을 생각한 것은 2010년. 재료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접 동네 골목을 돌며 버려진 물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많이 띈 소재가 나무였다. “몇 바퀴만 돌면 다양한 목재 가구들을 구할 수 있었어요. 새 목재는 가격이 비싼데 조금만 둘러봐도 이렇게 많은 나무가 있구나 싶었어요.”

더 많은 목재를 구하기 위해 찾은 재활용 집하장의 모습도 그에겐 충격이었다. 트럭에 잔뜩 실려온 폐가구들이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쳐지면 컨테이너에 담아 인천 항구의 소각장으로 보내는 시스템이었다. 그는 “가구를 버리는 사람도 돈을 내고, 소각하는 과정에도 돈이 드는 과정이 심각한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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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작가는 폐가구의 가치를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마음이 맞는 작가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목재 작품을 만들었다. 버려진 가구를 주워 가자 주민들이 직접 가져다주기도 했다. 정 작가는 ‘폐가구 재활용’을 시민 참여형 프로젝트로 만들자고 마음먹었다. 시민들이 참여해 폐가구로 작품을 만들어 보는 일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일반 주부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프로그램이 입소문을 타 어린 학생들이나 가족 단위 참여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정 작가는 “맨 처음 엄마 손을 잡고 가구를 만들러 왔던 초등학생들이 이젠 대학생이 돼 어린 친구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활용 가구들은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보내지기도 한다. 성북구청에 따르면 관내에 ‘가구 없이 생활하는 아동’은 3000여 명에 달한다. 방 안에 이불과 옷가지만 둔 채 살아가는 저소득층 아동들이다. “어린 나이에 ‘내 책상’ ‘내 침대’의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다들 겪어봐서 아시잖아요. 그래서 저소득층 중에서도 어린아이들에게 가구를 제공하고 있어요.” 정 작가는 관련 활동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현재 성북구 목공방 2곳에서 진행 중인 재활용 가구 제작 프로그램을 3곳에서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다.그는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이 있다. 사회와의 소통은 개인 작업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글=윤석만·백수진 기자 sam@joongang.co.kr
사진=김상선·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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