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먹으며 공부하는 검찰 정예요원들

중앙일보

입력

16일 점심시간, 서울고검 15층 회의실에 검사 70여 명이 모였다. 특수ㆍ인지 수사의 정예 요원들이 포진한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의 검사들이었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단상에 오른 손영배 첨단범죄수사1부장이 말문을 열면서 이 모임의 목적이 확인됐다. 그는 계좌추적과 관련된 수사 노하우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내노라하는 검찰 내 ‘칼잡이’들이 한 곳에 모여 수사에 대한 공부를 한 것이다.

검찰의 올해 핵심 과제는 수사 역량 강화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취임하면서부터 수사력 강화를 최우선 순위에 올려놨다. 이런 기조에 맞춰 중앙지검 3차장 산하 검사들이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강연을 통해 수사 노하우를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강연은 16일에 시작해 오는 25일, 다음달 1일과 6일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강연에 참여한 이동열 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수사력 강화의 가장 핵심은 결국 검사 개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새롭게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검찰 수사도 적응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이런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첫 번째 주제는 계좌추적이었다. 계좌추적은 뇌물 비리, 정치 자금 비리, 대기업 비자금 조성 등에 대한 수사에서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일이다. 손 부장검사는 계좌추적의 요령과 함께 인권침해 최소화 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해 검찰은 한국석유공사의 자원개발 비리를 수사하면서 이명박 정부 고위직 20여 명의 계좌를 조회했다. 결국 고발된 인물의 계좌를 확인하면서 연결된 계좌를 들여다 본 차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표적 수사'라며 반발했다.

다음 번 강연에는 중앙지검 특수수사를 총 지휘하는 이동열 3차장검사가 직접 나선다. 주제는 뇌물 등의 금품 사건이다. 최근 5년 동안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난 60~70건을 분석해 금품 공여자 진술의 신빙성을 입증하는 방법과 이를 재판에서 유지하는 방안을 설명할 계획이다.

박지원 의원의 알선수재 사건과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례 등 굵직한 사안들이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 의원은 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는 유죄를 받았지만 지난달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됐다. 돈을 줬다는 인물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한 전 총리도 지난해 8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앞서 1심에서는 정치자금 제공자가 진술을 번복하면서 무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다음달에는 이창온 거창지청장이 상경해 최근 법원이 배임죄에 대해 엄격한 잣대로 판단하는 추세에 대해 강연한다. 그 뒤에는 디지털 증거 확보 방안과 관련된 신영식 대검찰청 디지털수사과장의 강연이 진행될 예정이다. 강연에 참여한 한 특수부 검사는 “기존에 알던 것도 더욱 명확히 하고 수사 기법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교육이다"고 말했다.

이같은 검찰 내 움직임을 4월 총선 이후 진행될 사정 수사의 준비 작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달에 전국의 특수부장이 모여 공적자금 낭비를 부른 비리와 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횡령·배임 등 기업 범죄, 법조브로커 등 전문직역 비리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일 계획을 세웠다.

서복현 기자 sphjtbc@joon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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