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사유로 병역 12년 미룬 남성… 법원 "군대 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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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홀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김모(33)씨가 각종 사유를 들어 입영을 12년간 연기한 이유다. 병역면제 거부 취소소송까지 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 김정숙)는 김씨가 서울지방병무청장을 상대로 “병역감면 거부 처분과 현역병 입영통지를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가 ‘본인이 아니면 사실상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병역법 62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김씨의 입영 연기는 2002년부터 시작됐다. 2001년 징병 신체검사에서 3급을 받고 현역병 입영 대상이 된 김씨는 이듬해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이유로 3년 동안 입영을 늦췄다. 이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군에 입대해야 했지만 김씨는 12년 동안 12차례에 걸쳐 입영을 연기했다. 자격시험 응시ㆍ직업훈련ㆍ국가고시ㆍ질병ㆍ출국대기 등 연기사유도 다양했다. 무단기피와 행방불명으로 인한 연기도 있었다. 김씨는 2010년 3~7월에는 거주지 변동을 신고하지 않은 채 입영을 하지 않았고, 2010년 8월부터 2013년 10월까지는 행방불명상태였다. 김씨는 “당시 어머니가 정신질환이 심해져 집을 나갔었다”고 해명했다.

2013년 11월 서울병무청에서 행방불명자들을 대상으로 현역병입영통지를 하자 김씨는 바로 다음달 병무청에 ‘생계유지곤란 병역감면 신청’을 냈다. 이듬해 병무청 생계곤란 심의위원회는 “김씨의 어머니는 수입이 없고 아버지도 가족으로 볼 수 없어 생계유지가 곤란한 상황”이라며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재심에선 “2009년부턴 어머니의 수입이 있어 김씨의 병역 이행에 문제가 없었고 김씨가 고의로 병역을 기피했다”고 봐 신청을 거부했다.

김씨가 이에 불복해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지난해 2월 기각당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김씨는 “병무청의 고의로 병역을 기피했다는 전제는 잘못됐다”며 “병역감면 거부 처분은 위법”이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김씨는 2013년 감면 신청 이후로 올해까지 소송을 제기하며 입영을 3년 더 미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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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판단은 “김씨는 군대에 가야한다”였다.

재판부는 “김씨는 12년 이상 각종 사유로 입영을 연기하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생계곤란사유 병역감면원을 제출했다”며 “장기간 입영을 연기해 병역의무를 유예받는 동안 경제활동을 하면서 입영 후 가족의 생활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무단으로 입영하지 않은 당시 병역기피 목적이 없었다고 해도 이후 3년간 행방불명된 것은 고의로 행적을 감춰 병역을 회피하려고 한 사정이 엿보인다”며 “김씨와 그 가족이 입영으로 인해 입게 될 불이익이 병역 감면을 제한해야 할 공익의 필요성보다 크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혁준 기자 jeong.hyuk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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