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기자회견] "유종의 미 거두지 못해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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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15일 오후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5국을 마친 뒤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알파고 실력은 상수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끝없는 집중력 발휘하는 건 사람이 이기기 힘들 듯"

굉장히 아쉽다. 이번 챌린지가 끝나서 아쉽고,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아쉽다."

15일 알파고와 5시간 가까운 치열한 대국을 마친 뒤 이세돌 9단은 담담히 패배를 인정했다. 대국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번에는 초반에 내가 유리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럼에도 패한 건 저의 부족함이 다시 한 번 드러난 것"이라며 잠시 뜸을 들인 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이렇게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더 열심히 노력해서 더 발전하는 이세돌을 보여드리겠다"는 그의 말에 기자회견장에서 큰 박수가 나왔다.

이어진 문답에서 이 9단은 알파고의 강점과 실력을 구분했다. 그는 "일단 기본적으로 알파고가 상수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인간이 아직은 해 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며 " 그런 점에서 아쉽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특히 알파고와 다른 프로기사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는 웃음을 터뜨리며 "다르다. 그런 너무 당연한 얘기"라며 "기본적으로 사람이 아니고 두는 스타일, 생소한 환경 등이 너무 달랐다. 그것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알파고의 강점으로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끝없이 집중하는 것"을 꼽았다. 기회가 있다면 다시 승부를 겨루고 싶은 지 묻는 질문에는 그래서 "다시 겨뤄도 이길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며 "실력적인 부분은 인정을 못 하겠지만 심리적인 부분은 사람이 이긴다는 게 힘들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이 9단은 이번 대결에 즐거움을 표했다. 그는 "바둑은 물론 즐기는 것이고, 프로기사든 아마추어든 바둑은 즐기는 게 기본"이라며 "어느 순간부터 과연 내가 바둑을 즐기고 있나 의문이 있었는데 이번 알파고와의 대국은 원없이 마음껏 즐겼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인간의 창의력이라든지 바둑에 있던 격언에 의문이 들었다"며 "(알파고의 수법을 보면서)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이 다 맞았나, 앞으로 좀 더 연구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 데미스 허사비스 CEO는 이 날 기자회견에서 "손에 땀을 쥔 대단한 대국"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우리가 사실 프로기사는 아니라서 대국을 지켜보며 해설위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며 "알파고가 초반에 맥을 잡지 못하고 실수를 했지만 회복하고 미세한 접전을 펼쳤다. 훌륭한 대국이었다"고 말했다.

알파고의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우선은 이 대국에만 초점을 맞춰서 아직 향후 상황에 대한 명확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고 답했다. "앞서 말했듯 알파고에 대해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파악했다"며 "영국으로 돌아가 관찰한 사항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고 향후 상황을 검토해 더 대국을 할 지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등을 결정, 몇 개월 뒤 구체적인 안을 마련해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영어 해설을 담당한 크리스 갈록은 "역사적이고 아름다운 대국", "기념비적인 대국"등의 표현을 쓰며 바둑인으로서 "바둑에 전례없는 관심이 쏠리게 해 준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1국에 이어 이 날 5국도 우리말 해설을 담당한 김성룡 9단은 "첫날보다 더 많은 분들이 이곳에 왔다. 감사하다"며 "이 9단은 그만큼 위대한 도전을 했다"고 말했다.

김 9단은 "5국에서 이세돌 9단이 4국과 다른 전략을 택했다. 컴퓨터가 가장 잘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맞대응했다. 그 도전이 보기 좋았다"며 "1~3국에서 인간의 도전을, 4~5국에서 인간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봤다"고 평했다. 그는 딥마인드의 개발팀을 '알파고의 아버지', 이세돌 9단을 '알파고의 친구'로 부르며 두루 감사를 표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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