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北 '돌격대'는 노동착취 온상…40도 땡볕에 일하다 쓰러지면 벌금"

중앙일보

입력

섭씨 40˚C가 넘는 중동의 건설현장에서 땡볕 아래 하루 평균 12시간은 기본으로 일한다. 나오는 식사라곤 밥과 소금에 절인 무나 오이가 전부다. 작업복 주머니엔 소금을 항상 넣어놓는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에 염분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소금이라도 씹지 않으면 열사병에 쓰러지는데, 그렇게 되면 건강관리 부주의로 비판을 받는다. 말로 혼나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월급에서 10달러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90달러 정도 받는 월급에 생활비를 내면 10달러도 채 남지 않는다. 벌금까지 내면 가족에게 보낼 돈이 없다. 몸이 아픈 것도 사치다.

쿠웨이트 건설 현장에서 북한 노동자로 일하다 탈북한 김모씨의 증언이다. 신변 보호를 위해 익명을 요청한 그의 사연은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ICNK)가 14일 오후1시30분(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한의 강제노동 실태를 조명하기 위해 연 행사에서 소개될 예정이다.

이 행사는 유엔인권이사회 정기회의에 맞춰 북한의 ‘현대판 노예’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ICNK 권은경 사무국장은 전했다.

중앙일보가 사전입수한 발표문 전문에 따르면 김씨와 같은 북한 해외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휴일은 한 달에 하루다. 세탁·목욕이 유일하게 허락되는 날로, ‘문화일’이라고 부른다고 김씨는 전했다.

그는 “아침 4~5시에 일어나 밤 9~10시까지 일하고 숙소에 와서 목욕도 제대로 못하고, 잠을 자면서는 빈대나 쥐에 시달린다”며 “10㎡ 되나마나한 방에 7~8명씩 배치된다”고 증언했다.

월급을 제대로 받는다면 900달러 정도이지만 김씨는 이 중 10%만 북한 노동자들의 손에 쥐어진다고 전했다. 그나마 식비, 숙소 임대비, 출퇴근 버스비 등을 삭감해야 한다. 식사로는 쌀과 식수만 나오고 나머지 식자재는 자체 해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중동에선 엄격히 불법으로 금지된 밀주에 손을 대거나 건설 현장의 자재를 훔쳐다 팔아서 현금을 마련한다. 이런 경우에도 해당 국가의 경찰 당국에 적발되면 북한 현지 회사들은 모르쇠로 일관한다고 한다. 김씨는 “북한 현지 회사들은 불법적인 밀주행위를 조장하거나 장려하면서도 경찰에 걸리면 외면한다”고 전했다.

불평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불평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다. 김씨는 “사소한 의견이라도 표현되면 즉시 당 회의에서 비판을 받고 해외생활 불량자로 낙인찍혀 본국으로 소환되고, 다시는 해외로 돈을 벌러 나가지 못한다”며 “정부에 대한 너무도 당연한 불만이지만 참아야 한다. 오직 정부에 복종해야만하는 의무만 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북한이 이렇게 해외노동자 파견을 통해 벌어들이는 외화는 최소 2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대북소식통들은 추산한다. 4차 핵실험(1월6일)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2월7일)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와 각국의 단독 제재로 인해 북한은 해외 노동자 파견을 통해 외화벌이를 하는 방안을 더욱 적극 강구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해외 노동자뿐 아니라 북한 내에서의 노동 착취도 심각하다고 ICNK측은 전했다. 일명 ‘돌격대’라고 불리는 건설사업 조직이다. 이 돌격대에서 8년 복무한 뒤 탈북한 안수림(49)씨는 “겨울에 영하 30˚C가 돼도 공사를 해야 한다”며 “건설 장비가 없어 다 사람의 힘으로 하다보니 죽거나 다치는 사람도 많았다”고 증언했다.

안씨 본인도 1997년 철도공사에 필요한 나무를 베다가 협궤열차가 전복돼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를 목도했다. 안씨는 “이런 사건은 1년에 한두건 일어나지만 애도문 한 장 읽어주는 게 끝”이라고 전했다.

이런 돌격대는 중앙과 지방을 합쳐 약 40만명에 달하는 청년들로, 출신 성분이 좋지 않아 노동당에 입당할 자격이 없거나 군대에 입대 못하는 이들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기본 복무기간은 10년이다. 중간에 아파도 간염이나 결핵처럼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한 계속 일해야 한다는 게 안씨의 증언이다. 임금은 거의 없는 것과 다름없다고 한다. 안씨는 “누구도 임금이 없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안씨는 이렇게 일하다 꿈에 그리던 당증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집에 돌아왔을 땐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였다. 그는 “돌격대에서 근무하는 시기엔 외부와 접촉이 자유롭지 않아 부모님 사망 소식도 못 들었다”며 “죽을 고생을 하면서 돌격대 생활을 한 건 당원이 되기 위해서였는데, 너무 후회스러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증언자로 나선 김향옥(48)씨는 ‘인민반’이라고 불리는 강제노동에 대해 증언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나오는 일명 ‘1호 행사’가 있으면 인민반은 매일 청소에 동원된다. 평소엔 농촌동원전투에 동원돼 퇴비ㆍ파지ㆍ파철을 모아 당에 바쳐야 한다. 공사에 자재가 부족해도 동원된다. 김씨가 속했던 인민반이 건물 철거현장에서 자갈을 모으다 건물이 무너져 20명이 즉사하는 일도 있었다.

당국으로부터의 보상은 ‘0’이었다. 현재 남측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한다는 김씨는 “아직도 북한 주민들은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대가 없이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다”며 “더 큰 문제는 그래선 안 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ICNK측은 “북한의 노동착취에 대한 국제여론을 환기하기 위해 이 행사를 준비했다”며 “북한 당국은 체계적이고도 조직적 시스템을 통해 노동착취를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4일 행사엔 마르주끼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김태훈 대한변협 북한인권 특별위원장, 윤여상 북한인권기록센터 소장 등이 참석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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