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본 적 없는 바둑, 하지만 이세돌은 익숙해질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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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10일 두번째 대국에서도 알파고에 패했다. 이 구단이 경기후 기자회견장에 참석했다. 이 구단은 "완벽한 패배였다"고 말했다.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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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성석제(56)

바둑과 예술의 거리는 멀지 않다. 궁극의 수준에서는 둘 다 인간 정신의 지극한 아름다움을 추구해서다. 그래서 예부터 문인 가운데 바둑애호가가 많았다. 소설가 성석제(56·사진)씨가 그렇다. 아마 6단 기력(棋力)인 그는 “문학과 바둑 모두 오래되고 깊고 넓어 아름다운 세계”라고 믿는다. 그로부터 두 차례 대국 관전 소감을 들었다.

아마 6단 소설가 성석제 관전평
감정·실물 없는 미지의 AI와 싸움
이 9단, 참혹할 만큼 외로웠을 것
그래도 난 믿는다 그의 역전승

어려서부터 바둑을 두며 자랐다. 까만 조약돌, 깨진 조개껍데기로 바둑을 뒀다. 대학 졸업 직후 대기업(동양그룹) 홍보실에서 근무할 때 회사 주최 세계 기전에 관여하며 당시 한국기원이 있던 서울 관철동에서 술깨나 마셨다.

평소 존경하는 이세돌 사범이 인공지능 컴퓨터와 실력을 겨룬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이 사범의 5대 0 스트레이트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지금까지 새로운 바둑 프로그램이 개발될 때마다 매번 겪어 봤지만 번번이 실망해서다. 기계의 실력은 항상 소문보다 형편없었다.

바둑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서예처럼 어떤 도(道)를 지향한다. 우리가 잘 모르는 유현(幽玄)한 세계, 숨겨진 진리가 그 안에 있을 거라는 막연한 외경심을 품어 왔다. 상대의 호흡과 표정 변화, 땀, 냄새…. 사소한 것들이 승부에 미묘한 영향을 끼치는 바둑은 불완전한 인간의 안타까운 정신 예술이기도 하다. 묘수는 물론 실수까지 주고받으며 무아지경 상태에 빠진 두 대국자는 결국 후세에 길이 남을 명국을 함께 만들어 가는 동반자 관계를 형성한다.

오직 이기는 게 목적인 차가운 기계 앞에서 바둑의 그런 미덕은 그야말로 형해(形骸)만 남기고 사그라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컴퓨터의 인지·학습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인간 최고수에게는 턱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지나친 부담감이 독으로 작용해 이 사범에게 불리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어제·오늘, 알파고가 보여준 바둑은 인간이 경험한 적이 없는 세계였다. 이 사범은 인간을 대표해 미지의 세계와 조우했다. 존경하던 고수가 무참히 패배하는 모습을 보며 마치 내 존경심이 무시당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고수를 컴퓨터가 깼다고 컴퓨터를 존경할 수는 없다. 산업혁명 당시 러다이트(기계파괴) 운동이 떠오를 정도로 착잡하다. 인간의 생은 짧고 능력은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그 한계를 끊임없이 반성하면서 세상을 살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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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격언 중에 ‘반전무인(盤前無人)’이라는 게 있다. 바둑판 앞에 상대가 없는 것처럼 초연해야 잘 둘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사범은 기술 발전으로 실제로 반전무인 상황에 처했다. 허방을 딛는 느낌, 참혹할 정도로 외로웠을 거다.

하지만 나는 이 사범을 믿는다. 기계도 진보하지만 사람도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알파고에 익숙해진 이 사범이 남은 세 판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리라고 확신한다. 내 전망은 뭐냐고? 3-2, 역전승이다.

정리=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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