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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윤상현 막말 진상 철저하게 밝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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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달 27일 취중에 누군가와 통화하며 “김무성 대표를 쳐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녹음이 공개됐다. 윤 의원은 “김무성이 죽여버려 이 XX. 다 죽여, 그래서 전화했어”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당에서 가장 먼저 그런 XX부터 솎아내라고, 솎아내서 공천에서 떨어뜨려 버려야 한다고…. 내일 공략해야 돼”라고도 했다.

취중인데다 나랏님도 욕할 순 있다지만
친박의 비박에 대한 적의 그대로 드러나
여당 공천 투명·공정하다 말할 수 있나

이날은 김 대표가 정두언 의원을 만나 “친박계 핵심으로부터 현역 의원 40여 명의 물갈이를 요구받았다”고 말했다는 ‘살생부 논란’이 언론에 보도된 날이다. 윤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을 ‘누님’으로 부른다는 친박 핵심 의원이다. 친박계가 실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된 살생부 논란을 계기로 김 대표를 강하게 몰아붙이려 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물론 공개 석상이 아닌 취중 발언이다. 제3자의 도청에 의한 폭로일 가능성도 있다. 없는 데선 나라님도 욕한다는 옛말이 있고, 법률적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언행이다.

문제는 윤 의원의 막말로 친박 진영의 비박 진영에 대한 적의(敵意)가 어느 정도인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상대 당도 아니고 같은 당의 대표에게 보인 불신과 혐오다. 권력에 의해 당 대표까지 공천에서 떨어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진행되는 새누리당의 공천 심사가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저 친박 진영의 핵심 몇 명에 의해 좌우되는 요식행위란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 아니겠는가.

여야가 모두 공천 진통으로 몸살이다. 하지만 윤 의원 막말은 새누리당의 살생부 논란과 사전 여론조사 유출 사건에 이어 터져 나왔다. 정치인 자질 문제를 넘어 집권 세력의 도덕성, 새누리당 공천을 둘러싼 비열한 권력투쟁의 음습한 실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참담하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용납할 수 없는 망동”이란 비박계와 “정치 공작”이란 친박계로 갈려 파열음을 키우고 있다.

새누리당은 진상 규명을 철저히 하고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우선 윤 의원의 통화 상대가 ‘공관위원’이나 ‘공관위원들에 지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는지 밝혀내야 한다. 또 통화 내용의 일부가 실제로 실행에 옮겨졌는지, 혹은 앞으로 그럴 여지가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윤 의원은 스스로 책임지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윤 의원의 발언을 보면 김 대표와는 원한 관계에 놓인 사람처럼 보인다. 같은 당에 있어선 안 될 정도로 보이는 관계다. 다른 당으로 가거나 아니면 정계를 떠나는 게 옳다. 당원들이 선출한 당 대표가 당을 떠날 순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윤 의원은 통화 상대 공개와 정계 은퇴를 거부하면서 자신의 대화 녹음을 음모라고 주장한다. 그런 윤 의원을 어떻게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