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인공지능 시대의 본격화 알린 알파고의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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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가 프로기사 이세돌 9단과의 첫 대결에서 완승했다. 아직은 인간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대다수의 예상과 달리 186수 만에 이 9단에게 불계승을 거뒀다. 알파고는 초반 포석부터 끝내기까지 허점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대국 내내 보여준 수읽기는 프로기사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탄탄했다. 컴퓨터가 강점을 갖고 있는 형세 판단과 계산 능력을 유감 없이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목할 점은 많은 바둑 전문가가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이 두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는 점이다. 알파고는 초반 이 9단의 실리 작전에 맞서 두터운 세력을 형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중반에 결정적인 침입수를 날려 승기를 잡아 나갔다. 응수타진과 손빼기처럼 프로기사가 둘 법한 수단도 종종 등장했다. AI가 인간 고유의 영역인 인지·판단·추론의 영역에 들어서기 시작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알파고와 이 9단의 대국은 아직 네 판이 남아 있다. 승부의 최종 결과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첫 대국만으로도 AI는 이미 그 잠재력을 입증했다. 알파고는 지난해 10월만 해도 ‘프로기사 저단자 수준’으로 평가됐지만 불과 넉 달 새 세계 최고수 반열에 올라섰다. 이런 발전 속도는 이미 AI가 핵심 기술이 되고 있는 무인자동차와 원격진료, 금융투자 같은 분야에서도 체감하게 될 것이다. 알파고의 승리를 계기로 AI의 현재와 미래를 냉철히 그려볼 필요가 있다.

이는 AI에 대한 활발한 연구개발(R&D)과 상용화를 통해 가능하다. 하지만 이 분야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투자가 뒤처져 있는 게 현실이다. 미국만 해도 구글과 IBM·MS·애플·페이스북 등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이 모두 나서 다방면에 걸친 연구와 제품화를 서두르고 있다. AI를 어떻게 통제하고 활용할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국가적 전략도 아직 없다. 역사적인 대국에서 알파고가 승리한 의미를 곰곰이 되짚어야 할 이는 이세돌 9단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