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가 만난 사람] “이란, MOU엔 관심 없어…기술이전 하겠다는 신뢰 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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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준 아시아건기 대표는 “이란을 큰 내수 시장으로만 바라보는 건 오판”이라며 “중앙아시아 진출을 위한 요충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오상민 기자]

지난달 16일 이란에 대한 서방의 금융·경제 제재가 해제되면서 이란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세계 각국 기업과 정부도 이란 잡기 경쟁에 나섰다.

19년 전부터 이란과 거래
방효준 아시아건기 대표

19년 전부터 이란과 비즈니스를 해온 ‘이란통’ 방효준(65) 아시아건기 대표을 지난 3일 영등포구 영등포동 그의 집무실에서 만나 이란 시장 공략법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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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건기는 크레인·건설중장비 무역 업체다. 방 대표에 따르면, 이란 비즈니스는 일반적인 국제 비즈니스 관례와는 상이한 측면이 있다. 이를 이해하지 않으면 비즈니스가 성사되기 어렵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란 시장은 왜 중요한가.
“인구 8000만명의 거대한 내수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수출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는 한국 기업의 막힌 혈을 뚫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장만 보는 건 하수다. (세계지도를 펼치며)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대규모 공사에 긴요한 수입 물자는 대부분 이란 항구를 거쳐 들어간다. 이란을 개척한다는 건 미개척지인 중앙아시아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세우는 것과 같다.”
우리 기업이 알아야 할 이란 문화는.
“이란 글로벌 기업 중 상당수가 이슬람 종교 단체에서 출발했다. 종교가 정치·경제·사회를 지배하는 구조다. 이란에서 가장 무서운 게 종교경찰이다. 국영 항공사인 이란항공 카운터 여직원 한 명이 히잡을 쓰지 않고 근무했다고 이란항공 당일 영업이 중단된 적도 있다. 흔한 오해는 이란인과 중동인을 동일시하는 거다. 아랍 국가들과는 달리 이란 인구의 다수는 페르시아족이다.  두 민족은 외모부터 식습관, 문화까지 상이하다. 이란은 페르시아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상당하기 때문에, 같은 중동에 있다고 아랍인과 이란인을 동일시하면 상당한 결례가 될 수 있다. 문화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표현도 주의해야 한다. 이란인이 주식으로 삼는 빵을 중동에서 일했던 한국인들이 모양 때문에 속칭 ‘걸레빵’으로 부르는 일이 있다. 이란과 비즈니스에 앞서 두어 차례 식사를 하는 게 현지 관례인데, 실수로라도 ‘걸레빵’을 언급할 경우 굉장히 불쾌해한다.”
이란 비즈니스의 특징은.
“한국 사람들에 비해 형식을 따지지는 않는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MOU) 체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과거 한국 기업이 몇 차례 MOU를 체결했다가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일단 작은 거래부터 시작하는 문화가 있다. 따라서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소규모 계약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성실히 수행해야 향후 대규모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이란이 가장 필요한 건 기술이전과 노하우다. 일을 맡기면 장기적 기술이전을 제공하겠다는 신뢰를 줘야 거래가 가능하다.”
정부의 역할이 있다면.
“일단 서울-이란 직항로 개설부터 서둘러야 한다.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프랑스에 방문해 에어버스와 항공기 114대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이탈리아에서 170억 달러(약 20조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것처럼, 한국 대통령이 이란을 방문한다면 경제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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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기업과 이란 기업의 비즈니스를 중개한 적이 있나.

 “지금도 이란 대기업이 발주한 조 단위 굴착장비 제조 프로젝트를 삼성이 수주할 수 있도록 중개하고 있다. 서방의 경제 제재를 고려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지 않으면서도 교류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란 축구 대표팀이 유니폼 스폰서를 물색할 때 LG에 후원을 제안한 적도 있다. 이 중개는 LG가 거절해 성사되지 않았다. 축구가 이란의 국기(國技)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선택이다. 만약 당시 LG가 스폰서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경제 제재가 해제된 지금 큰 기회가 찾아왔을 거란 생각이다.”

한때 대거 대형공사를 발주했던 중동 일부 국가는 재정 상황이 악화하자 말을 바꾸고 있는데 이란도 이럴 염려는 없나.
“이란은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민족인 만큼 자부심이 크고 약속을 잘 지킨다. 게다가 그동안 경제 제재로 팔지 못한 기름이 막대하게 쌓여있는 자원 부국이다. 수 년 후 공사를 완료했을 때, 이들이 약속을 어기거나 대금을 지급하지 않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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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사진=오상민 기자

◆방효준=크레인·건설중장비 무역 업체인 아시아건기 대표. 한국크레인협회 수석부회장. 미국 크레인 제조사 매니토웍크레인그룹의 극동지사장을 1980년부터 21년간 지냈다. 2001년~2012년 매니토웍크레인그룹 한국지사장으로 근무한 뒤 2013년부터 아시아건기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국제표준협회(ISO) 산하 크레인 분과에서 국제표준을 규정하는 한국 전문위원으로 활약 중이다. 1997년 최초로 이란에 대형 크레인을 공급한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대이란 중개 관련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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