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세요, 증오 멈춰요~…그래미상 후보 오른 말라위 교도소 밴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기사 이미지

제58회 그래미어워드 후보에 오른 좀바 교도소의 재소자 밴드. 비록 상을 받진 못했지만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사진 좀바 프리즌 프로젝트 밴드 페이스북]

아프리카 남동부에 있는 말라위의 좀바 교도소는 최악의 장소다. 영국 식민 시절인 1895년 지어져 허물어질 듯 낡은 건물엔 살인·강도·폭행을 저지른 흉악범 약 2000명이 수감돼 있는데, 수용 능력이 330명에 불과해 재소자들은 좁고 더러운 감방에서 배를 곯으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가난·문맹의 무기수 등 16명
에이즈·소외 다룬 노래 20곡 발표
갈등 해소 전문 프로듀서가 도와
상 못 받았지만 세계 언론 큰 관심

더구나 에이즈까지 만연해 재소자들은 “출소할 땐 누구라도 에이즈 감염자가 될 것”이라고 공포에 떤다.

 이곳에 최근 놀라운 뉴스가 전해졌다. 재소자로 구성된 ‘좀바 프리즌 프로젝드 밴드(Zomba Prison Project Band)’가 제58회 그래미어워드 수상 후보가 됐다는 소식이었다.

CNN·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들의 음반 ‘난 더 이상 가진 게 없다(I Have No Everything Here)’는 지난해 말 그래미어워드의 월드뮤직 부문 후보로 선정됐다.

기사 이미지

'좀바 프리즌 프로젝트 밴드'의 웹사이트. 이들의 음반 ‘난 더 이상 가진 게 없다(I Have No Everything Here)’를 듣고 구매할 수 있다.

15일(현지시간) 발표된 수상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상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1인당 GDP(국민총생산) 226달러에 불과한 최빈국 범죄자의 음악은 최고 팝스타 음악만큼의 관심을 받고 있다.

 밴드는 2013년 꾸려졌다. 미국의 음악 프로듀서 이언 브레너가 교도소를 방문하면서다. 갈등 해소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원래 재소자와 교도관에게 강의를 하기 위해 좀바를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금세 이들의 음악에 빠져들었다. 르완다·남수단 등에서 현지 음악인과 작업해 온 브레너는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은 자신들만의 순수한 목소리였다”고 평가했다.

 남녀 재소자 14명과 교도관 2명으로 밴드가 만들어졌고 교도소 내에 간이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밴드 멤버들은 직접 곡을 쓰고, 연주하고, 현지어인 치체와어 가사를 붙였다. 밴드의 여성 재소자들은 양동이를 두드리며 음반 작업에 참여했다.

'좀바 프리즌 프로젝트 밴드'의 연주 영상 [영상=유튜브]

열흘의 녹음과 후속 작업을 거쳐 지난해 1월 음반이 완성됐다. 수록된 20곡의 음악은 말라위에서의 삶을 생생하게 그렸다. 복수를 위해 원수의 아이를 살해하는 증오 범죄를 멈추자고 호소하고(‘Please, Don’t kill my child’), 여성들이 일하는 동안 빈둥대는 마을의 남성을 질타하며(‘Women Today Take Care of Business’), 에이즈로 고통받는다(’See the Whole World Dying of AIDS’)고 노래한다.

아무런 기교 없는 기타 반주에 맞춰 읊조리듯 노래하는데도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이 살아있다. 브레넌은 이들의 음악에 대해 “인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장 변방 국가의, 가장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범죄자를 미화한다”는 지적도 한다. 그러나 브레넌은 말라위를 모르는 소리라고 반박한다. “수감자의 85%는 가난한 문맹이다. 사법 제도에서 소외되거나 영어로 진행되는 재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유죄 판결을 받는다”는 것이다.

 바깥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좀바 프리즌 프로젝트 밴드’는 그래미어워드 후보 선정 소식을 최근에야 접했다.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엘리아스 치메냐는 “나는 음악을 통해 회개했다. 수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지만, 감옥 밖에서 음악을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를 비롯한 몇몇 밴드 멤버들은 종신형을 선고받아 영원히 꿈을 이룰 수 없다. 브레넌은 음반 수입을 재소자 권익에 사용할 계획이다. 생필품·식품·금전으로 밴드 멤버에게 물질적 보상도 하겠다고 밝혔다.

'좀바 프리즌 프로젝트 밴드'를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상=유튜브]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www.joongang.co.kr)에 들어가면 ‘좀바 프리즌 프로젝트 밴드’의 사이트를 통해 음악을 듣거나 구매할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