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 “신인 자세로 도전, 홈런 숫자 신경 안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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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의 전지훈련지인 플로리다 포트마이어스에도 박병호를 알아보는 팬들이 많다. 팬들에게 둘러싸여 사인을 해주고 있는 박병호. [포트마이어스=김식 기자]

박병호(30·미네소타 트윈스)는 잠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훈련 틈틈이 다른 선수에게 말을 걸었고, 먼저 인사하는 선수에겐 환한 미소로 답했다. 16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마이어스의 하몬드스타디움에서 만난 박병호는 편안해 보였다. 통역원 김정덕 씨는 “박병호 선수가 영어를 대부분 알아듣는다. 곧 내가 할 일이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웃었다.

[김식 기자 스프링캠프를 가다]
강정호, 스윙 바꾸지 마라 조언해줘
한국서 하던 대로 훈련 페이스 유지
단어장 들고 영어공부는 과장된 것
동료들과 일상 대화 문제 없어

 아침 일찍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한 박병호는 오전 10시 수비훈련에 들어갔고, 30분 후 타격훈련도 했다. 메이저리그(MLB) 선수들과 마이너리그 유망주들이 함께 한 이곳에서 박병호의 꿈이 무르익고 있었다. 훈련이 끝난 뒤 야자수 아래서 만난 그는 “MLB에서 난 신인이다. 서두르지 않고 일단 부딪혀 보겠다”고 말했다.

 - 포트마이어스에 온 지 열흘이 됐는데.

 “금세 적응했다. 빅리그에 있는 선수들이든, 마이너리그 선수들이든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다가와 인사한다.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한국의 날씨는 어떤가’ 등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 받는다.”

 -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이 많다.

 “미국에서 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훈련을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내가 잠시 시간을 낼 수 있으면 사인을 해드리려고 노력한다.”

 - 영어 발음이 꽤 좋다.

 “하하, 아니다. 기본적인 대화를 하는 수준이다. 영어가 참 어렵다. 내가 좀 알아듣는다 싶으면 상대방의 말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대화가 진전되지 않으면) ‘내 영어는 이 정도’라고 말한다. 내가 한국에서부터 영어 단어장을 들고다니며 공부했다고 하는데 그건 (넥센 후배) 김하성이 과장해서 말한 거다. 영어 공부를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 동료들과 꽤 잘 어울리던데.

 “한국에 있을 때 외국인 선수와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타국에서 힘들고 외로울 테니까 내가 먼저 다가갔다. 여기서는 나만 한국인이니까 그들이 많이 도와준다. 나도 먼저 말을 걸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팀에 적응할 수 있다고 들었다.”

 - 훈련은 어떻게 돼가나.

 “지금 가볍게 배팅을 시작한 정도다. 한국에 있을 때와 페이스가 비슷하다. 미국에 왔다고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지 않도록 노력 중이다. 너무 무리하면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트윈스는 지난해 12월 박병호와 4년 1200만 달러(5년 최대 1800만 달러·약 217억원)의 조건에 계약했다. 포스팅 비용(원 소속구단 넥센에 지급한 이적료) 1285만 달러(약 155억원)까지 더하면 3000만 달러가 넘는 거금을 투자했다. 미들마켓(지난해 MLB 30구단 중 팀 연봉 18위)의 미네소타는 박병호에게 그만큼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박병호는 “구단이 내게 투자를 한 만큼 기량을 보여줄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주전경쟁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박병호는 지명타자로 기용되다가 상황에 따라 트윈스의 간판스타 조 마우어(33)와 1루수를 나눠 맡을 것으로 보인다.

 - 시즌을 치르면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한국에서도 홈런 수를 목표를 세운 적이 없었다. 실제로 숫자(홈런·타점 등)를 신경쓰며 야구를 하진 않았다.”

 - 지난해 한국에서 타구 속도 141.2㎞를 기록하며 2위(1위는 NC 테임즈·141.5㎞)에 올랐다.

 “강한 타구를 날리는 게 중요하다. 빅리그 투수들을 상대한 적은 없지만 TV로 봐도 공의 움직임이 심하더라. 거기에 맞서기 위해 (강하면서도) 간결한 스윙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스윙 메커니즘을 크게 바꾸는 건 아니다. 1년 먼저 MLB에 진출한 강정호(29·피츠버그 파이리츠)가 ‘바꾸지 말고 그냥 해. 투수와 상황에 따라 알아서 대응하게 된다’고 하더라. 그렇게 해볼 참이다.”

 - 염경엽 넥센 감독이 ‘박병호는 생각이 많은 게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말하더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내 성격 때문에 그런 것 같다.(웃음) 내가 스트레스 투성이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걸 관리하고 이겨냈으니 좋은 성적(4년 연속 홈런·타점왕)을 올린 것 아닌가. 물론 스트레스를 덜 받고 야구 잘하는 선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안 풀릴 때만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라 잘할 때도 더 잘하려고 노력한다. 지금까지 잘 이겨냈으니 괜찮다. 자신감만 잃지 않으면 된다.”

 인터뷰를 마친 뒤 박병호는 집으로 향했다. 그는 캠프기간 통역원 김씨, 에이전트 한재웅 씨와 한집에서 살고 있다. 박병호는 “함께 밥도 해먹고 즐겁게 지낸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풀어줄 수 있는 분들”이라며 웃었다.

포트마이어스=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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