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한 수] 구사일생의 묘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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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7단은 공격에 능하다. 그는 돌을 잡는 법을 안다. 조훈현9단은 타개에 능하다. 그는 돌을 살리는 법을 안다. 그러나 고수들은 생사(生死)를 건 극한의 공방전을 금기로 여긴다. 바둑판 위에서도 생사의 문제는 인간 능력 밖의 일. 그처럼 알 수 없는 것에 승부를 거는 것은 무모하기 때문이다.

# 장면1

조훈현9단(흑)과 이세돌7단(백)이 맞선 왕위전 도전자결정전. 조9단이 한순간 방심한 사이 이7단이 흑대마를 잡으러 왔다.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살(殺)의 바둑으로 끝장을 내겠다는 것.

백1, 3으로 드디어 흑대마는 백척간두에 섰다. 백에겐 A의 치중수가 가장 큰 무기. B로 나오는 수도 있다. 그렇다고 흑B로 따내는 것은 백C로 막혀 사망.

#장면 2

그러나 고심하던 조9단의 눈에 흑1의 수가 문득 눈에 띄었다. 천우신조랄까. 죽는구나 싶을 때 기막힌 묘수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흑1의 붙임은 일석삼조의 수.

우선 A의 치중을 막고 있고 백? 한점이 달아나는 것도 막고 있다. 또 B의 반격마저 엿보고 있어 흑대마는 겨우 한숨 돌리게 되었다. 이 대마는 결국 패로 생사를 가리게 되었고 패싸움을 이긴 흑이 바둑도 이기게 되었다.

흑1의 붙임은 조9단 일류의 감각이 살아 숨쉬는 구사일생의 묘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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