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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내 안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는 한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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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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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

‘내 재능을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으면 어떡할까’라는 고민에 빠진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거문고가 된 오동나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어느 날 아궁이에서 오동나무가 타고 있었다. 채옹이라는 선비는 나무가 타들어가는 소리만 듣고도 곧바로 알아차린다. ‘좋은 재목이로구나!’ 채옹은 아궁이에 불을 때던 사람에게 돈을 주고 곧바로 오동나무를 산다. 타들어간 자국이 아직 남은 그 오동나무는 결국 멋진 거문고가 된다. 과연 그 소리는 상상한 대로 영롱하고 아름다웠다. 채옹이 아니었다면 땔감으로 끝나버렸을 오동나무는 훌륭한 거문고가 되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게 된다. 채옹이 만든 거문고를 초미금(焦尾琴)이라 한다. 꼬리가 그을린 거문고라는 뜻의 이 초미금은 ‘하마터면 땔감으로 끝날 뻔한 그을림의 흔적’을 안고 있었기에 더욱 특별한 사연을 품은 악기가 되었다.

배경 없는 나를 인정해준 지음의 벗만큼이나 소중한 건
내 곁의 거문고 흐느낌 들어줄 예민한 귀와 따스한 마음

만약 그때 신나게 타오르는 오동나무를 그저 ‘잘 타고 있구먼’ 하고 지켜보기만 했다면 오동나무는 영원히 악기가 될 축복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나 또한 ‘내 안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봐 준 선배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글을 쓰며 살아올 수 있었다. 대학원 시절 나는 알고 보니 저마다 휘황찬란한 ‘배경’을 갖고 있는 동기들의 면면을 알게 된 후 낙담한 적이 있었다. 누구는 유명한 시인의 자제, 누구는 문학사에 길이 남은 문필가의 자손, 누구는 명문대 교수님의 자제였다. 나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아무개의 딸’인 것 같았다. ‘왜 내 주변에는 작가도 없고, 유명한 사람 하나 없는 것일까’ 하는 어리석은 열패감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 자체가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부끄러워 더 열심히 공부와 아르바이트에 매달렸지만, 마음속에서는 ‘언제 땔감으로 버려질지 모르는 나라는 오동나무’에 대한 조바심이 깊어 갔다.

그런 내 길 잃은 목마름을 누군가 알아봐 준 것일까. 평소에 내 글쓰기를 눈여겨본 S선배는 내게 ‘글을 써 보라’며 서평전문 잡지를 소개시켜 주었고, 나는 처음으로 원고료를 받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길이 열렸다. 나는 마치 사생결단이라도 하듯 절박하게 서평이나 문학평론을 쓰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원고청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서우면서도 행복했다.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내게 ‘글쟁이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처음으로 길을 터 준 그 선배에게 항상 고맙고도 죄송한 마음이 화인(火印)처럼 가슴에 박혀 있다. 그는 아마 나 같은 석사과정 꼬맹이를 잡지에 추천해 주느라 아마 자신의 ‘이름’을 걸어야 했을 것이다. 내가 그 고마움을 갚을 수 있는 길은 후배들에게 그런 길을 열어 주는 것이라 믿는다. 글을 잘 쓰는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그의 재능을 담을 만한 좋은 매체가 없을까, 어디 알맞은 일자리가 없을까 고민하곤 한다.

만약 그때 선배가 나를 잡지사에 추천해 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타인의 사소한 비판에도 세상에서 가장 얇은 유리잔처럼 금세 자존감이 박살 나 버리는 나는 험악한 생존의 정글을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라는 오동나무는 문학을 ‘한때의 치기’로 치부해 버린 채 스스로를 ‘생존의 땔감’으로 태워 버렸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나는 문학을, 글쓰기를, 공부를 포기할 뻔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내 안의 오동나무’ 어딘가에 그을린 자국이 선연히 남아 있음을 깨닫곤 한다. 아직 나는 최고의 소리를 내는 거문고가 되지는 못했지만, 내가 결코 땔감이 아니라 거문고라는 것만은 믿는다. 내 안의 흐느끼는 거문고 소리를 말없이 들어준 그 선배는 지금도 나에게 변함없는 스승이자 멘토가 되었다. 당신이 외롭다고 느낀다면 좀 더 세심한 눈길로, 좀 더 다정한 마음으로 주위를 잘 살펴보자. 내 안의 거문고 소리를 들어줄 지음(知音)의 벗을 찾는 것만큼이나 소중한 것은 내 곁에서 이미 울리고 있는 다른 거문고의 흐느낌을 제대로 들어줄 수 있는 예민한 청각과 따스한 마음이 아닐까.

정여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