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육아, 밤엔 치안 … 서초구 골목 밝히는 반딧불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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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육아 공간 역할을 하는 서초구 양재2동의 반딧불센터. [사진 서초구청]

#1. “Can you speak English?(영어 할 줄 알아요?)” 지난달 21일 오후에 찾아간 양재동의 반딧불센터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영어 구연동화를 선보이고 있었다. 귀를 쫑긋 세운 5명의 아이들은 ‘Apple’(사과), ‘Toy’(장난감) 등 쉬운 영어를 따라 말하며 재미있어 했다.

방배·양재·반포동 일반 주택가
아파트 관리사무소 같은 역할
생활 공구 빌려주고 택배 수령도
올해 안에 세 곳 더 설치하기로

외손녀 연보라(4)양을 데리고 왔다는 박영옥(69)씨는 “보라가 친구들과 어울리며 말도 늘었다”며 웃었다.

#2. “따르릉~”. 1일 오후 10시 방배3동의 반딧불센터. 문자메시지를 알리는 신호음과 함께 자율방범대원 이순종(45)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한 여학생으로부터 “집까지 동행해달라”는 요청이 온 것이다. 이씨는 동덕여고에서 앞에서 여학생을 만나 도보로 10분 거리인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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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3동 반딧불센터에는 주민들이 집을 비웠을 때 택배 기사가 물건을 놓고 갈 수 있는 함이 마련돼 있다. [사진 서초구청]

지난해 서초구에 들어선 ‘반딧불센터’들이 새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세대·연립주택 밀집 지역에 설치된 반딧불센터는 공동 육아공간, 공구(工具) 대여소, 무인 택배함 등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3월 방배3동을 시작으로, 양재동(8월), 반포동(12월)에도 들어섰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이 “아파트의 관리사무소 같은 기구가 없어 살기 불편한 주택가의 주거·생활 환경을 개선하겠다”며 내건 선거공약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한다. 센터명은 ‘작지만 모이면 환한 반딧불처럼 주민들이 모여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반딧불센터가 활기에 차는 건 오후 2시부터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동네 아이들이 찾아와 ‘키즈카페’가 된다.

여섯 살과 네 살의 두 아들 을 둔 방배 3동 주민 김선영(35)씨는 “전에는 아이와 놀아주기 위해 인근 아파트 놀이터까지 가곤 했는데 지금은 여기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저녁에는 직장과 학교에서 돌아온 어른들 로 붐빈다. 각종 생활도구를 빌리러 오는 경우도 잦다.

드라이버 같은 소소한 도구부터 전동 드릴이나 사다리 등 일반 가정이 갖추기 힘든 도구를 무료로 빌릴수 있다. 무인 택배함에서 낮시간에 집을 비운 사이 맡겨진 택배를 찾아가는 장면도 자주 보인다.

주부 박용숙(43·양재2동)씨는 “예전에는 밤 늦게 집에 없는 도구가 필요하면 멀리 마트나 철물점까지 가야했으나 그럴 일이 없어졌다”며 “또 택배 기사를 기다리느라 집에 묶여 있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이곳은 밤에는 치안센터가 된다. 주민들로 이뤄진 야간 순찰대(3인1조)가 반딧불센터를 거점으로 매일 밤 순찰을 돈다. 휴대전화 등을 통해 요청이 들어오면 밤 늦은 시간에 여성과 노인을 집까지 바래다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입소문이 나면서 이용객도 늘고 있다. 개소 초기에 4~5명에 불과했던 하루 평균 이용객은 올 1월엔 27명(방배동), 48명(양재동), 25명(반포동)으로 불어났다. 조 구청장은 “올해 안에 서초1동, 방배1동·4동 등 세 곳에도 반딧불센터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김준승 인턴기자(동국대 4)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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