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준비 어쩌나…설 코앞인데 월급 못 받은 3만7000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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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제주시 도남동 한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철제 구조물에 올라가 밀린 임금을 요구하는 고공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경기도 수원에 사는 신모(55)씨와 조모(58)씨는 다가오는 설이 두렵다. 손자녀에게 줄 세뱃 돈은 커녕 차례를 지내기 위한 장 볼 돈도 없기 때문이다.

5인 이하 영세업체 체불 늘어
사법처리 대상 만 1795억원
고용청, 휴일도 상담·제보받아
체납 확인 땐 대신 임금 지불

지난해 6월부터 12월 말까지 한 주택공사 현장에서 목수로 일했지만 각각 456만원과 502만원의 임금을 못 받았다. 이들을 고용한 건설업체 사장은 “밑지는 공사를 했다”며 6개월간 120만원씩 만 지급했다.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에 신고했지만 막막하기만 하다.

건설현장에서 페인트 칠을 하는 대구의 김모(76·여)씨도 최근 대구고용노동청을 찾았다. 지난해 11~12월 대구시 동구와 경남 통영에 있는 건설 현장에서 일한 돈 340만원을 못 받았다.

고용노동부에 의하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1만1143명의 근로자가 663억7600여만원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 사법처리 대상인 체불임금은 제외된 금액이다.

지난해 말 현재 사법처리 중인 체불임금은 2만6608명의 1795억원3900만원이다. 전문가들은 건설 노동자나 영세사업자 근로자 등 상당수가 고용부 신고를 하지 않고 있어 임금체불 피해자는 더 많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임금체불 근로자의 피해구제를 돕고 있는 손민숙(47·여) 한국노총 경기상담소장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경우 임금을 받지 못해도 신고하지 않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며 “통계로 잡힌 피해 수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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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체불 신고액이 점차 늘고 있는데다 소규모 사업장은 늘고 대규모 업장은 줄어드는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도 문제다. 임금체불 신고액은 지난 2011년 1조874억원에서 지난해 1조2993억원으로 4년 사이 19%나 늘었다.

또 지난 2014년 한해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임금체불 신고액은 3128억여원에서 지난해 3503억여원으로 11% 늘었다. 반면 500인 이상 사업장은 같은 기간 25.1%(401억여원→300억여원) 줄었다.

임금체불 불만을 이유로 자살소동을 벌이거나 임금을 못 준 업체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끝는 극단적 선택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5일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한 빌라 신축 공사현장 6층 옥상에서 건축 공사 현장팀장인 A씨(50)가 “인부 20여 명이 건축주로부터 임금 750여만원을 받지 못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뛰어내리겠다”고 말하며 1시간30여 분 동안 시위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현대중공업 S협력사 대표 B씨(63)는 경영난으로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지 못한 부담감 등을 유서에서 토로했다.

전국 곳곳에서 임금체불 관련 집회나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4일부터 이틀간 제주시 도남동 한 빌라 신축공사 현장에선 공사 근로자들의 시위가 있었다. C씨(46) 등 30여 명의 근로자가 수개월째 임금 수 천만원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전남지역 크레인 기사 200여 명도 설 연휴 직전인 4일부터 집회를 예고하고 나섰다. 한전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 여수본부가 발주한 공사현장의 하청업체로부터 현장에 투입한 크레인 임대료 5억여원을 못 받은 데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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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역 고용노동청은 근로감독관을 대거 투입해 체불임금 청산에 나섰다. 체불 청산 의지가 있는 사업주에게 융자를 지원하고 근로자에게는 싼 이자로 생계비를 빌려주는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체납이 확인된 경우 사업주 대신 정부가 근로자에게 임금을 주는 ‘소액체당금 제도’도 운영 중이다.

진재영(45) 노무사는 “일부 사업주는 근로자 급여 문제를 후 순위로 놓는 경우가 많다”며 “임금 체불 문제가 발생할 때 하청업체는 물론 원청업체와 발주처도 적극 개입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대구·청주·광주광역시=박수철·김윤호·최종권·김호 기자 park.suche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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