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는 게 저주일 수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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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호 22면

일러스트 강일구

지인과 오랜만에 만나 지내온 얘기들을 하다가, 아이 교육 고민으로 넘어갔다. 고등학생 아이가 노력에 비해 성과가 없어 과외를 해볼까 고민한다고 했다. 퍼뜩 후배의 아들이 의대에 들어간 것이 생각나 선생으로 강력 추천을 하며 그 아이의 탁월함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런데 다음날 지인의 전화가 왔다.아이 엄마가 반대를 한다고 했다. 전에도 최상위권 대학생의 과외를 받았는데 결과가 별로 였단다. 똑똑한 학생일수록 평범한 아이의 공부 고민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슷한 고민과 좌절을 경험해본 중위권 대학 학생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설명을 듣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이해가 갔다. 자기 자신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해도 그가 좋은 선생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거스 히딩크 감독도 선수시절은 화려하지 않았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뉴턴이 1990년 이런 실험을 했다. 1번 집단은 노래에 맞춰 테이블을 두드리도록 하고 2번 집단은 그 노래 제목을 맞히라고 했다. 실험결과 2번 집단은 120곡중 세 곡밖에 못맞췄다. 두드리는 장단만으로는 도저히 노래를 떠올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1번 집단에게 2번 집단의 정답률을 추측해보라고 하자 50%는 맞출 것이라 대답했다는 것이다. 테이블을 두드리는 동안 자기들은 머릿속에서 노래를 흥얼거렸으니, 상대방도 당연히 쉽게 연상을 할 것이라 상상했기 때문이다. 이 실험을 바탕으로 스탠퍼드대 교수 칩 히스는 ‘지식의 저주’란 이름을 붙였다.그는 “사람이 무엇을 잘 알게 되면 그것을 모르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상상하기 어렵게 되며, 결국 정보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의 실패가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이는 자기중심성에서 비롯된 일이다. 특히 많은 것을 공부하고 경험한 사람이거나, 뛰어난 성공을 거둔 사람일수록 ‘자신이 잘 알고 이 판을 이해하고 있다’는 믿음이 강하다. 자기가 아는 것이 많고, 확신이 강한 만큼 “어떻게 이걸 몰라”라는 감정이 앞선다. 상대방의 얼마나 무지한지 정도를 상상하지 못한다. 아니 하기 싫어한다. 결국 한숨을 푹쉬며 찬찬히 기본부터 설명을 하기 시작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려다보는 마음, 냉소와 경멸적 시선은 완전히 감출 수 없다.


아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부모일수록 사실은 아이를 잘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런 부모일수록 아이를 향해 “몇 번을 얘기해야하는 거니”. “몇 살이 되었는데 아직도 못해”라고 말하기 쉽다. 이때 부모의 냉소적 감정은 아이에게 바로 전달된다. 사실 부모가 알고 있는 아이와 진짜 실체는 아이의 나이가 들수록 달라진다. 아이는 부모에게 보이고 싶은 부분만 보이는 것에 점차 능숙해진다. 자기 세계를 간직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아이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야말로 부모가 갖기 쉬운 ‘지식의 저주’다. 나중에 호되게 당하지 않으려면 나는 아이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마음을 베이스로 아이와 대화를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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