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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살기 위한 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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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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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

소설가에게 필요한 자질은 물론 여러 가지다. 아마도 그것들이 균등하게 발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설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하는 타인들을 발견하는 눈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시기,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나가는 기예가 특히 발달하는 시기, 소설의 가치와 소설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자의식이 유독 강해지는 시기가 따로 있으리라. 각각 대상, 방법, 가치의 층위라고 해보자. 내가 보기에 소설가 윤이형은 이 세 층위 모두에서 가장 예민한 상태를 통과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소설집 『러브 레플리카』를 읽으니 알겠다.

윤이형 소설집 『러브 레플리카』

 예순아홉의 나이에 양육을 떠맡은 할머니가 있다. 매일을, 새벽 여섯 시부터 자정까지 19개월 된 손주를 돌본다. 육체적 통증과 심리적 공허가 그녀를 파괴한다. 집이 비는 주말이면 그녀는 소주를 마시면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나는 기계가 아니다.” 그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아는 사람은 (그녀의 딸까지를 포함해서)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녀 앞에 베이비시터 로봇인 대니가 나타나면서 ‘대니’라는 소설이 시작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에서 기계가 되어가는 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이 되어가는 기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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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우리 현실의 가장 아픈 곳을 직시하게 한다. 소설가 윤이형의 작업이 바로 그렇다. [중앙포토]

 ‘굿바이’라는 소설이 그 뒤를 잇는다. 한쪽에는 현실에 절망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고자 기계인간이 되기를 선택하고는 화폐 없는 사회를 꿈꾸며 화성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들은 실패한다. 다른 한쪽에는 화성으로 떠나지도 못하고 지구에 남아 더는 나빠질 수도 없는 자본주의의 고문 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떠날 수도 남을 수도 없는,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삶. 엄마의 자궁 속에서 이 모든 과정을 보고 듣는 어느 태아가 주인공이다. 그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스스로 어떤 결단을 내린다.

 두 작품의 설계도를 보면 로봇 맞은편에 인간이, 화성 이쪽에 지구가 있다. 작가가 로봇과 화성을 상상하는 것은 지구와 인간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이 고통스럽기 때문이고, 나뿐만 아니라 남들도 다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상이 시작된다. 정신의학에서 망상은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의 탈출이라고 했던가. 소설에서의 상상 역시 출발은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에서의 탈출은, 그것이 오히려 우리 현실의 가장 아픈 부분을 똑바로 보게 만들기 때문에 탈출이라기보다는 진정한 귀환이 된다.

 눈부시면서 동시에 아득할 수 있을까. 윤이형은 그런 작가가 되었다. 그는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해에 등단했다. 두어 번 스쳤을 뿐 소설로만 그의 삶을 가늠했다. 어른 되기의 힘겨움을 고백한 ‘쿤의 여행’을 읽으면서는 우리가 같은 세대임을 반갑게 되새기면서도, 동성애를 둘러싼 고통을 섬세하게 그린 ‘루카’를 읽으면서는 저만치 깊어진 한 작가를 발견하고 놀란다. 어렸을 때 친구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신비롭고 두려웠다. 그때와 비슷한 감정으로 나는 그를 바라보고 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