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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치사 피고인, 변호인이 “살해죄” 주장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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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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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갓 낳은 영아를 공터에 버려 저체온증 등으로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2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울산지법에서 재판을 받았다.

아동학대, 법원이 응답하라 <상>
영아 살해보다 아동학대 형량 세
아동 사망 고의·과실 판단 힘들어
아동학대치사죄 무분별 적용 우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적용 법조문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담당 검사는 A씨를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치사죄(무기징역 또는 징역 5년 이상)로 기소했다.

그러자 A씨 변호인은 “아동학대치사죄 조항은 내용이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법정형이 지나치게 높다. 영아 살해의 고의가 있었으니 그보다 법정형이 낮은 형법상 ‘영아살해죄’(징역 10년 이하)로 적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심리 끝에 재판부는 변호인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검사의 동의 없이 죄명을 형법상 ‘영아유기치사죄’(징역 3년 이상)로 고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을 맡은 부산고법은 “아동학대치사죄는 고의든 과실이든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폭넓게 적용하라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A씨에게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죄명을 다시 아동학대치사죄로 고쳐 유죄를 선고하면서 형량은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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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월 신설된 아동학대치사죄는 ‘아동학대 범죄로 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다. 현행 법은 ‘살해 의도’에 따라 살인죄와 치사(致死·결과적으로 사망)를 엄격히 구분해 처벌한다.

B씨와 C씨가 똑같이 사람을 죽게 했더라도 처음부터 죽이려는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긴 B씨에겐 살인죄,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C씨에겐 치사죄를 적용한다.

  아동학대는 장기간 이뤄지기 때문에 그로 인한 사망의 고의·과실 여부를 가리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고의성 입증이 안 될 경우 무분별하게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할 소지가 있다.

사안에 따라 형법상 살인·상해치사·유기치사·폭행치사를 적용할지,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할지에 대해서도 재판부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권고 형량도 입법 취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동학대처벌법을 발의했던 여당의 한 관계자는 “학대의 정도가 심각하면 살인죄에 준하도록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을 반영해 법정형을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양형위원회가 제시한 아동학대치사죄의 선고 권고 형량은 기본 4~7년, 최대 13년6월까지다. 일반적인 살인죄의 양형 기준(보통동기 기준)인 10~16년에 훨씬 못 미친다.

이 때문에 아동학대처벌법이 시행된 2014년 9월 이후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한 사건 중 최대 형량은 8년이었다.

건국대 로스쿨 김영철(형법) 교수는 “아동학대치사죄의 법정형은 결코 낮지 않은데 대법원의 양형 기준이 낮아 문제”라며 “아동학대의 고리를 끊으려면 법원이 엄벌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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