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3당합당의 비밀… ‘승리연합 이론’ 따른 지분 결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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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호 28면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3당합당을 공동발표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3자회담을 갖고 보수 3당이 주축이 되어 중도 민주세력을 총집결 시키는 대연합을 이루기로 하는 합당선언문을 채택했다. [중앙포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80일밖에 남지 않았다. 선거구는 아직도 획정되지 않았고, 대신 정치인의 이합집산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치는 세(勢) 대결일 때가 많고, 이익을 독식하면 그 세를 유지하기 어렵다. 공유할 수 있는 대의명분이나 공공정책으로 연대를 모색하기도 하지만 공유할 수 없는 이익은 나눌 수밖에 없다. 지분에 만족하면 합류하고 불만이면 이탈하기도 한다.


손·발(힘)이 많고 입(이익을 배분해야 할 구성원)은 적은 연대가 바람직하겠지만, 손·발과 입은 함께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승리의 몫을 많이 가져가기 위해선 가능한 한 작은 연합을 모색한다. 예컨대, 3인 가운데 과반수를 만들면 승리연합이 된다고 할 때, 더 큰 자기 몫을 위해 2인으로만 승리연합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멤버 가운데 누구든 빠지면 승리할 수 없는 승리연합은 ‘최소승리연합(minimal winning coalition, MWC)’이라 부른다.


연대는 또한 가급적 비슷한 사람끼리 맺는다. 너무 다르면 연합의 공동 결정에 어려움이 커지기 때문이다. 더 유사한 정파부터 차례로 끌어들이는 연합은 ‘연결연합’이라고 부른다. 구성원 가운데 누구라도 빠지면 승리 혹은 연결이 되지 않는, 이른바 ‘최소연결승리연합(minimal connected winning coalition, MCWC)’이 정당 간 연합에서 관찰된다는 것이다.


승리연합은 전리품을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좋을까? 예컨대, A·B·C의 3인이 있다. 둘 이상의 연합이면 승리하게 되며, A+B라는 승리연합이 6개의 전리품을 나눈다고 가정하자. A가 4개, B가 2개를 갖는 배분방식은 유지하기 어렵다. 불만을 가진 B가 C에게 3개씩 나누자고 제안하여 새로운 승리연합을 구성할 경우, A는 자신의 몫 4개를 유지한 채 배반한 B를 빼고 대신 C를 끌어들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A와 B가 각각 3개씩 분배하는 방식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만일 B가 좀 더 큰 몫을 얻기 위해 C에게 2개를 분배하고 자신은 4개를 얻는 방식을 시도한다면, A는 자신의 몫 3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C에게 3개를 제의하여 B를 배제한 새로운 승리연합을 추진할 수 있다. 그래서 B는 배반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이처럼 배반자가 더 큰 지분을 가지려고 새로운 승리연합을 모색할 때 다른 승리연합을 구성하여 그 배반자를 응징할 수 있는 배분방식을 ‘흥정집합(bargaining set)’이라고 부른다. 이는 배분의 황금비로도 불릴 수 있다.


민자당, 정치 연대 평균 수명보다 길게 존속연대의 결성과 유지 전략은 한국 정당들의 합당과 분당과정에서 종종 관찰된다. 지금으로부터 꼭 26년 전인 1990년 1월 24일 민주자유당(이하 민자당) 통합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그 나흘 전인 1월 20일 비밀리에 9개항의 합당 각서가 작성됐고,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노태우 대통령 겸 민주정의당(이하 민정당) 총재, 김영삼 통일민주당(이하 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이하 공화당) 총재가 모여 9시간 동안의 회동을 가진 이후 합당을 선언했다. 이른바 3당합당이다.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은 민주주의나 정치윤리적 측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런 태생적 비판과 내분에도 불구하고 5~6년을 존속했으니 한국 정당의 평균 수명에 비하면 매우 안정적인 연대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3인의 지도자는 “민주 발전 위해 조건 없이 통합”한 구국(救國)의 결단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으로 민자당의 탄생과 존속을 설명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전략적 계산에 충실한 정치적 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3당합당 직전 평화민주당(이하 평민당)·민주당·민정당·공화당의 의석비는 각각 24%, 20%, 43%, 12%였다. 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하는 ⅔ 이상 연합은 ①평민+민주+민정+공화(99%) ②평민+민주+민정(87%) ③평민+민정+공화(79%) ④평민+민정(67%) ⑤민주+민정+공화(75%)의 5가지다. 평민+민주+민정은 민주가 빠져도 ⅔ 승리연합이 유지된다. 평민+민정+공화는 공화가 없어도 ⅔ 승리연합이다. 즉 한 정당이라도 빠지면 ⅔ 연합이 되지 않는 최소승리연합(MWC)은 평민+민정 그리고 민주+민정+공화뿐이다. 당시 민정당은 실제로 이 두 가지를 각각 추진했다.


3당합당 직전 한국 정당들의 이념적 입장은 좌에서 우로 평민당-민주당-민정당-공화당의 순서였다. 이는 여러 설문조사들로 확인된다. 승리연합이 될 때까지 더 유사한 정당부터 차례로 끌어들이는 ⅔ 이상 최소연결승리연합(MCWC)은 평민+민주+민정 그리고 민주+민정+공화, 이 2가지뿐이다. 평민+민주+민정의 경우, 평민당이나 민정당이 빠지면 ⅔ 승리연합이 되지 않고, 민주당이 빠지면 연결연합이 되지 않는다. 민주+민정+공화도 누가 빠지면 승리나 연결이 되지 않는 MCWC이다. 26년 전 일어난 민주+민정+공화의 합당은 MWC 이론과 MCWC 이론이 공통으로 예측한 구성 그대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고 김근태 전 상임고문의 4주기 추모행사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 뒤 뒤돌아서고 있다. [중앙포토]

민정당, 평민+민정 연합도 추진이제 민자당 내 세 계파의 지분을 살펴보자. 합당 직후 민주계는 민정·민주·공화 간 당무회의 구성비를 9:7:4로 이미 합의했으니 그렇게 분배할 것을 요구했다. 이 분배방식에 민정계는 반발했다. 실제 이 분배 비는 이탈한 구성원을 응징할 수 없는 취약한 방식이었다. 만일 민정계가 평민당과 새로운 연합을 구성하여 각각 10씩 갖는다면, 민주계는 자신이 받기로 한 7을 유지한 채 새로운 대응 연합을 구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민자당은 자당에게 배정된 12개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민정·민주·공화의 세 계파에게 6:4:2로 분배했다. 또 사무처·정책위·의원실 등의 국장 및 부장급 인선을 5:3:2로, 시·도 지부장 인선을 7:4:3으로 분배했다.


3당합당 후의 승리연합이 민정+민주+공화, 민정+평민, 평민+민주+공화 이 3가지만 가능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는 내각제 개헌과 거대 여당에 대한 부정적인 국민 여론에서 만든 전제다. 만일 민정계가 50%+α의 지분을 원하여 평민당에게 50%-α를 주는 새로운 연대를 추구한다면, 민주+공화는 평민당에게 50%를 주는 대응 연합을 구성하여 민정계를 응징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공화가 50%+α를 갖기 위해 평민당에게 50%-α를 제공하는 연대 또한 민정계의 역공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7:4:3, 6:4:2, 5:3:2 등의 분배 비처럼 민정계가 전체의 50%에 달하는 지분을 갖는 것은 9:7:4의 경우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민자당은 5~6년을 버텼다.


승리연합의 기여도를 놓고 보자면 민주계와 공화계는 같은 영향력을 갖는다. 즉 민주계와 공화계는 동일한 지분을 갖는 것이 안정적인 배분 방식이다. 민주계보다 배분을 훨씬 적게 받은 공화계는 결국 95년 2월 민자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다.


합당으로 75%에 달하는 의석을 갖게 된 민자당은 2년 후 실시된 9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49.8%라는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신한국당으로 개명하여 참가한 9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46.5%의 의석을 얻었다. A+B+C는 A, B, C 각각의 의석을 합한 의석 수를 유지하지 못했다. 3당합당은 선거 승리가 아니라, 국회 장악을 위한 연대였을 뿐이다. 민자당은 비교적 효과적인 배분으로 연대 유지에 성공했지만 다음 선거에서 의석을 대폭 축소 당할 수밖에 없었다.


선거 직후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관찰되는 연립내각과 달리, 국회의원 선거 직전의 분당·연대·합당의 주 목적은 선거 당선자를 많이 내는 것이다. 물론 함께 할 수 없는 정파가 있다면 그것도 감안해야 한다.


2014년 3월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합당하여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다. 126석의 민주당과 2석의 새정치연합이 지분을 5대5 정신으로 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뜻이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안 의원은 2015년 12월 탈당했고 지금 국민의당을 창당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변경했다. A+B가 분리 후 각자도생하여 얻은 A와 B의 의석 수 합이 분리 전 A+B의 의석 수보다 더 클지 아니면 더 작을지는 각 정파가 앞으로 대응하기 나름이다.


‘야당 분열=여당 이익’ 아닐 수도선거 판의 지지율→득표율→의석비 등의 전환에서 정치권의 희비가 엇갈린다. 유권자는 자신의 가치에 가장 가까운 정파를 지지하지만, 자신의 표가 사표(死票)가 되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영향력 있는 정파를 골라 투표한다. 또 소선거구제에서는 의석비가 득표율 그대로 되지 않는다. 이런 전환 과정이 있기 때문에 전략적 여지는 더욱 크다.


작금의 야권 분열은 기존의 양당 경쟁과 어떤 차이를 가져다 줄까. 먼저 지지율→득표율 단계에서, 야권 분열로 인한 야권에 대한 실망에서 오는 반사이익 말고는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기존 양당 체제에서 상대적으로 새누리당을 가깝게 느끼던 유권자 일부에게 더 가깝게 다가간 제3의 정당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조건이 동일하다면, 2개 정당과 경쟁하는 선거 상황에서의 득표율과 의석비는 1개 정당과 경쟁하는 선거 상황보다 불리하다. 또 야당들은 사표 방지 심리의 야 성향 표를 얻기 위해 세를 과시할 수밖에 없다. 외부 영입이 그런 예다.


득표율→의석비 단계에서는 야 성향 유권자의 표가 여러 야당 후보에 분산되는 선거구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낮은 득표율로 당선될 가능성이 커졌다. 각 정파는 이런 효과들을 고려하여 선거 대진표를 짤 수 있을 것이다.


불안정한 정당 체제는 한국 정치의 일상이 되었다. 정파 간 연대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것이고 또 선거 결과에 따라 새로운 연대가 추진될 것이다. 그 연대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변화를 겪을 것이다. 연대 모습이 바뀌더라도 연대의 원리는 같다.


김재한한림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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