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룰라, 경제 안풀려 답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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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시장 원칙을 중시하는 '뜻밖의 보수주의'행보로 국제 금융계에서 호평을 받아온 브라질의 좌파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가 최근에는 안팎의 난제(難題)에 휩싸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브라질의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올들어 크게 줄어들었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하향 조정됐으며, 토지 없는 농민들의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재정 긴축과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으로 채권.외환시장에서 단기성 투자를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일자리를 창출하고 장기적인 성장을 뒷받침하는 FDI 유치는 미흡했다"고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올들어 5월까지 브라질에 대한 FD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9%나 감소한 33억달러에 그쳤다. FDI는 공장.발전소를 세우거나 실물자산을 매입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외국인들이 브라질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는 것은 집권 노동자당(PT)과 독립적인 감독기관들 간에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데다 경기 부양을 둘러싸고 정부 안에서 이견이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차관 협정을 체결해야 하는지를 놓고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것도 FDI 유입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골드먼삭스의 신흥시장 담당인 파울로 레메는 "앞으로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12월이 만기인 IMF 차관 협정을 갱신하거나 해외자본을 추가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브라질은 내년 중 모두 3백90억달러에 달하는 대외채무를 갚아야 한다.

올해 경제성장 전망도 나빠졌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상치를 2.2%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 인플레를 잡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펴다 보니 소비가 위축되면서 경제성장이 지체되고 있는 것이다.

룰라 취임 이후 한때 중단됐던 토지 없는 농민들의 농장 점거도 2월 말 다시 시작됐다.

'토지 없는 농업노동자 운동(MST)'소속 농민을 비롯한 토지 없는 농민의 농장 점거 사건은 올들어 지금까지 1백3건이 발생해 반년 만에 지난해 전체 점거 사건 수를 넘어섰다.

현재 브라질 법은 경작되지 않는 땅을 개인들이 농지개간 목적으로 점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MST 소속원이 점거하는 농장은 대부분 법에서 허용하는 대상 토지가 아니다. 브라질은 전체 인구의 20%가 전체 경작지의 90%를 독점하고 있는 반면, 최빈층 40%는 경작지의 단 1%만 소유하고 있다.

취임 직후부터 '굶주림과의 전쟁'을 선언하는 등 이 문제 해결을 다짐했던 룰라로서도 재원 부족 등으로 쉽게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버드대 로버트 배로 교수(경제학)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룰라의 브라질에 유보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브라질은 아직 좀 의문스럽다. 새 정부가 시장경제를 말하지만 진보 계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했기에 두고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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