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지극히 예외적인 성매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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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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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댑니다. OOO씨 맞으십니까?” 당분간 많은 이들이 이런 전화를 받을 것이다. 그중 상당수는 ‘올 게 왔구나’라는 생각에 강렬한 ‘심쿵’의 순간을 맞을지도 모른다. 보이스피싱이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불행 직감의 법칙을 새삼 확인하는 경우도 많겠다.

 경찰관은 해당 전화번호의 주인이 수신자가 맞음을 확인한 뒤에는 “혹시 XXX에서 성매매한 적 있으십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당최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하면 아마도 소유 차량의 번호나 채팅 애플리케이션(앱) 아이디 등을 대며 ‘다 알고 전화했다’는 투로 되받을 가능성이 크다. 인정하든 부정하든 그 수신자에게 경찰은 출석을 요구할 것이다.

 서울경찰청 조사실에 피내사자 신분으로 불려 나온 이들은 항변할 것이다. 사실 무근이다, 호기심 차원에서 채팅 앱에서 이것저것 물어본 적은 있지만 그게 다였다, 돈 주고 오피스텔에까지 간 것은 맞지만 상대 여성과 대화만 했다…. 사실일 수도 있다. 세상에는 비상식적인 일도 많다. 사회적 관심 속에서 시작된 수사는 지지부진을 거쳐 용두사미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유사 사건이 대부분 그렇게 끝났다.

 경찰이 6만 명 이상이 들어 있는 성매매 의심자 명단 파일을 입수해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해 본 전개 과정 예상이다. 명단에는 누군가가 ‘창작’했다고 보기 힘들 정도의 디테일들이 있다고 한다. 그걸 떠나서 우리 사회 도처에 성매매 현장이 널려 있음을 대개의 남성은 알고 있다. 오피스텔 업소가 전국에 수만 개 있다는 게 정설이 된 지 오래다. 온라인상에는 이른바 ‘조건 만남’ 문구가 넘쳐난다.

 한국에는 종교 국가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강력한 수준의 성매매 방지법이 있다. 그런데도 선진국이나 그 언저리에 있는 국가 중에서 우리만큼 돈 주고 성을 사기 쉬운 곳도 없다.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2004년보다 현재의 성 거래가 줄었다는 증거, 물론 없다.

 이쯤에서 정부는 “졌다”고 선언해야 한다. 6만 명을 다 처벌한다 해도 별로 달라지는 것 없고 거래와 접선이 더욱 은밀해질 뿐이란 점도 인정해야 한다. 상황 직시에서 시작해야 현실적 대책이 나온다. 예외적인 게 한두 가지가 아닌 나라이지만 성매매 법과 현실의 괴리(‘국가적 위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특히 심하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