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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축구대표팀 권창훈, '서울 빵집 아들'로 불리는 날을 꿈꾸다

중앙일보

입력

빵! 빵! 빵!

'빵집 아들' 권창훈(22·수원)이 잇따라 축포를 쏘아올렸다. 올림픽축구대표팀 공격수 권창훈은 17일 카타르 도하의 카타르SC 스타디움에서 열린 예멘과의 아시아축구연맹 23세 이하 챔피언십 조별리그 C조 2차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한국의 5-0 대승을 이끌었다. 2연승을 달린 한국은 오는 20일 이라크(2승)전 결과와 상관없이 8강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지었다. 리우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을 겸한 이번 대회에서 3위 안에 들면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따낸다.

권창훈은 이날 2선 공격수로 나섰다. 신태용(46) 감독은 그에게 자유롭게 움직이며 활발하게 공격을 해줄 것으로 주문했다. 그는 감독의 주문대로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녔다. 전반 14분 침투패스를 받아 오른발슛으로 선제골을 뽑아낸 권창훈은 전반 31분엔 헤딩슛으로 골망을 갈랐다. 그는 또 전반 41분 강력한 오른발슛으로 세번째 골을 기록했다. 23세 이하로 선수 연령을 제한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최종예선 이후 한국 선수가 해트트릭을 작성한 건 권창훈이 처음이다.

권창훈의 별명은 '빵훈이'다. 아버지 권상영(57)씨가 서울 강남구에서 28년째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빵집 아들이다. 지난 2009년 수원 매탄고 스카우트였던 조재민씨는 "당시 중학교 랭킹 1위 선수가 창훈이었다. 창훈이는 바둑의 이창호(41) 9단처럼 상대보다 두 수를 먼저 봤다"면서 "창훈이를 영입하기 위해 빵집을 찾아갔는데 그가 아버지 일을 돕고 있었다.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선수라는 생각이 들어 석달간 거의 매일 빵집에 찾아갔다"고 전했다.

권창훈은 키 1m74㎝, 몸무게 69㎏로 축구선수치곤 체구가 작은 편이다. 그러나 그는 매탄고에 진학한 뒤 '왼발의 마법사' 고종수(38) 당시 매탄고 코치로부터 왼발 기술을 전수받았다.

고종수 코치는 "내가 신인 때 김호 감독님께서 '디에고 마라도나(56·아르헨티나)는 눈이 1000개 달린 것처럼 시야가 넓다. 강력한 중거리슛을 날리려면 왼 발목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해주셨다. 창훈이에게도 같은 말을 해줬다"고 전했다. 고종수가 그랬던 것처럼 권창훈은 침대에 밴드를 걸고 왼 발목을 잡아당기는 튜빙 훈련을 반복했다. 상대 수비가 그의 왼발을 집중 마크하자 이번엔 오른발 훈련도 병행했다.

권창훈은 지난 14일 우즈베키스탄과의 1차전에선 부진했다. 에이전트인 장민석 씨는 "창훈이는 지난해 프로와 대표팀을 오가며 50경기 이상을 뛰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당한 왼 무릎 부상 여파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창훈이는 의지가 강하다. 결국 이겨냈다"고 말했다. 왼발을 쓰지 않고도 이날 해트트릭을 달성한 권창훈은 "동료들이 좋은 패스를 해준 덕분"이라며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

월드컵에 세 차례 출전해 11골을 터뜨린 독일축구의 전설 위르겐 클린스만(52·현 미국 감독)은 선수 시절 '보트낭 빵집 아들'로 불렸다. 슈투트가르트 보트낭의 빵집 아들이었던 클린스만은 아버지로부터 제빵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그의 가족들은 지금도 빵집을 운영 중이다.

권창훈도 클린스만의 조국인 독일에서 '서울 빵집 아들'로 불리는 날을 꿈꾸고 있다. 볼프스부르크, 호펜하임, 아우크스부르크 등 독일 분데스리가 팀 스카우트들은 이날 카타르를 찾아 그의 플레이를 눈여겨봤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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