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안 관계 ‘현상유지’ 다짐 … 당분간 큰 변화 없을 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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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호 3 면

16일 대만 첫 여성 총통에 당선된 차이잉원 후보의 지지자들이 타이베이의 민진당 당사 앞에서 차이 후보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사진이 나란히 붙어있는 플래카드를 들고 성원을 보내고 있다. [AP=뉴시스]

8년 만의 대만 정권 교체는 양안 관계에도 상당한 변화를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이해가 걸린 양안 관계의 풍향이 바뀌면 국제 정세의 기류도 변하게 마련이다.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60) 당선인이 4년 전의 패배를 설욕하고 첫 여성 총통에 오르게 된 것이 대만 국내의 일로만 그치지 않는 이유다.


민진당 정권의 재등장은 중국으로선 달갑지 않은 일이다. 비록 예전 천수이볜(陳水扁) 정권처럼 급진적인 대만 독립을 추진하지는 않을 거라곤 해도 독립 지향이 강한 민진당의 기본 노선 자체엔 변화가 없다. 지지기반도 대만 독립을 희망하는 남부 지방의 본성인(本省人)이 주축이다. 1949년 공산당에 밀려 대만으로 패퇴해 들어온 대륙 출신자들과 그 후손을 의미하는 외성인(外省人)은 주로 국민당을 지지한다.


또한 젊은 세대일수록 독립을 지향하는 성향이 짙다. 혈통적 뿌리는 중국 대륙에 있다고 해도 대만에서 태어나 대만에서 자란 세대가 자신의 조국을 중국이 아닌 대만이라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경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세대가 내려갈수록 더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기간 동안 대만 TV로 방송된 소수 정당의 광고 중엔 젊은 여성이 나와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가 아닙니다. 대만은 중화민국입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런 의식을 ‘대만 정체성’이라 부른다.


이번 선거에서 차이 후보가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대만 정체성이 뚜렷한 젊은 세대가 표를 몰아준 데 기인한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대만의 젊은 세대 사이에선 ‘반중국 정서’가 확산됐고 이는 곧 ‘반국민당 정서’로 이어졌다.

큰 전환점이 된 게 2014년 3월부터 일단의 대학생들이 약 한 달 동안 입법원(국회) 청사를 점거했던 ‘해바라기운동’이다. 당시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중국과 체결한 서비스무역협정의 비준안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이 협정은 2010년 체결된 양안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의 후속 협정이다. ECFA가 자유무역협정(FTA)에 버금가는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이 협정의 발효가 필요했다. 하지만 대학생과 상당수의 시민·지식인은 “대만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이대로 가면 중국에 먹히게 된다”며 반대했다.


실제로 마잉주 총통 취임 이후 대만 수출에서 중국(홍콩 포함)이 차지하는 비중은 40%까지 올라갔다. 해외 투자 비중은 60%가 중국을 향했다. 중국이 기침만 해도 대만 경제는 마비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걱정이 퍼지게 된 이유다. 마 총통은 학생들에게 밀리는 모양새를 보였다. 결국 국회 비준을 미루는 조건을 받아들여 농성을 풀게 했다. 이런 모습은 국민당 지지자들에게조차 큰 실망을 안겨 줬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의 지방선거에선 사상 처음으로 타이베이(臺北) 시장 자리를 잃는 등 참패를 했고, 그 여파가 이번 선거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대만 독립 성향이 강한 계층의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이 후보는 이번 선거기간 중 양안 관계가 쟁점화되는 것을 극도로 자제했다. 이는 양안 관계에 대한 신념을 뚜렷하게 펼쳤던 2012년 선거 때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는 줄곧 양안 교류에 대해선 ‘현상 유지’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15일 막판 유세에서는 “양안이 평화롭게 발전하기를 원한다. 현상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급격한 변화를 원치 않는 중간층을 의식한 선거 전략이었다. 2012년 선거에서 선명하게 양안 관계 지론을 펼쳐 유권자들의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경험에서 온 학습효과이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당 주리룬(朱立倫) 후보는 “차이 후보는 애매모호한 말만 한다. 지나치게 공허하다”고 밀어붙였지만 양안 관계 쟁점화를 회피한 민진당의 전략은 성공을 거뒀다. 민진당 우자오셰(吳釗燮) 비서장은 “이번 선거에서 양안 관계는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선거 결과를 결정짓는 요인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차이 당선자는 취임 후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가. 그가 선거기간 내내 현상 유지를 공약한 이상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확대된 경제 교류와 인적 교류를 제한하거나 축소하는 조치는 취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차이 후보는 “대륙에서 오는 관광객 숫자를 제한하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이런 입장은 국제사회의 불안감을 줄이는데도 일조했다. 그가 현상 유지 입장을 처음 내놓은 것은 지난해 6월 미국을 방문한 길에서였다. 그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연설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밝혔고 미국 조야의 요인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천수이볜 집권 당시 대만 독립 추진으로 인한 긴장 조성을 억제하기 위해 고생했던 미국은 차이 후보의 입장을 반겼다. 당시 미국은 대만 요인을 정부청사 내에서 만나지 않는 관례를 깨고 국무부 청사에서 차이잉원을 접견하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해 줬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대륙 정부와 적절한 긴장관계가 있는 민진당 정권의 출현을 희망했을 수 있다.


차이 당선인의 신중해진 언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요소가 남아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중국이 양안 관계의 기본으로 설정한 ‘92공식(共識)의 수용 여부다. 92공식이란 리덩후이(李登輝) 총통 시절인 1992년 중국과 대만 양측 당국자가 홍콩에서 만나 양안 관계의 미래를 논의한 결과물이다. 양측 모두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이되 하나의 중국을 대표하는 정부가 어디를 말하는지는 각자 해석에 맡긴다는 것이다. 대만은 ‘중화민국’이 전 중국을 대표하는 정부라고 주장해도 하나의 중국을 받아들이는 한, 즉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지 않는 한 중국 정부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국민당 주리룬 후보는 선거기간 중 TV토론회에서 92공식을 수용하는지 여부를 줄곧 캐물었다. 예전의 차이 후보는 “그런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번에는 미묘하게 달랐다. “92년 그런 논의가 있었던 역사적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건 (양안 관계의 기본 설정에 대한) 여러 선택지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전 대만인의 컨센서스가 아니다”고 밝혔다.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완곡하게 한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중국이 92공식의 수용을 양안 관계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양안 첫 정상회담도 대만 정권이 바뀌기 전에 92공식에 대한 재확인을 대만 최고통치자의 입을 통해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시 주석과 차이 당선인은 92공식의 수용을 둘러싸고 한동안 기싸움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 양안 간에 밀사를 보내 서로의 입장을 타진할 것이란 예상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선 누구도 예상하기 힘들다.


대만 신정부의 입장과 그에 대한 중국의 대응 여하에 따라 대만 해협에 다시 격랑이 일 수도 있다. 지난 8년 동안 대만 해협은 평온했다. 그 평온한 물길을 따라 양안 교류는 순풍을 탔다. 이제 그 평온했던 바다의 파고가 얼마나 높아질지는 5월 20일 차이 당선인의 취임사가 나올 때 측정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타이베이=예영준 특파원?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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