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새 먹거리?…1300명 당한 조건만남ㆍ몸캠 사기 주의보

중앙일보

입력

남성 A씨는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한 여성을 만나 알몸채팅인 이른바 ‘몸캠’을 했다.

그런데 여성은 A씨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해상도가 떨어져 몸이 잘 안 보여요. ‘voice.apk’라는 해상도 개선 파일을 설치해줄래요?

A씨가 파일을 설치하자 여성은 협박범으로 돌변했다.

“당신의 스마트폰 개인정보가 다 나한테 들어왔다. 돈을 내놓지 않으면 가족에게 몸캠 파일을 보내겠다”는 협박이었다.

여성이 설치를 요구한 파일은 사실 스마트폰 정보 해킹 파일이었다.

A씨는 여성에게 250만원을 송금한 뒤 “금융사기를 당했다”며 금감원에 신고했지만 피해구제를 받을 수 없었다. 몸캠 같은 불법 거래는 전기통신금융사기법 구제 대상이 아니어서다.

피해자가 모르고 당하는 보이스피싱·대출사기와 달리 피해자가 불법 거래인 줄 알면서도 수락했다가 입은 피해를 구제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금융감독원이 12일 조건만남·몸캠을 비롯한 불법거래 유인 사기 주의보를 내렸다.

최근 보이스피싱·대출사기 단속이 강화되자 보이스피싱 조직이 기존 노하우를 이용해 조건만남 같은 신종 사기를 새 먹거리로 삼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피해자가 신고를 꺼리는데다 금감원도 단속 권한이 없다는 점을 악용한 범죄다.

지난달 23일에는 조건만남 알선을 미끼로 1300명의 남성으로부터 8억5000만원을 갈취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과 짜고 대포통장으로 선금을 받은 뒤, “여성이 나오지 않는다”는 항의가 들어오면 보증금·안전비를 추가로 요구했다. 대포통장으로 선 보증금과 추가 보증금 입금을 요구하는 피싱조직의 대출사기 수법과 흡사하다.

상당수 피해자는 금감원 불법 사금융신고센터에 구제신청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금감원은 “조건만남은 사기죄, 몸캠은 협박죄여서 경찰 수사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조건만남·몸캠 피해를 입었다면 송금 이체내역서와 사기 피해 화면이미지를 캡처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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