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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국 노총의 노사정 합의 파기는 자기부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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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노총이 오늘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9·15 노사정 합의 파기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탈퇴 여부를 논의한다. 탈퇴를 논의한다는 건 한마디로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9·15 노사정 대타협은 1년이 넘는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다. 이 안에 한국노총의 요구가 상당히 반영됐음은 물론이다. 합의 안 된 부분은 나중에 논의해 처리키로 돼 있다. 합의문에 한국노총이 도장을 찍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역대 한국노총 위원장들이 8일 노사정 신년인사회에서 탈퇴를 만류한 것도 자기부정만은 하지 말라는 충정 아니겠는가.

 이뿐만 아니라 한국노총이 탈퇴하면 내부 약속도 깨는 셈이 된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12월 21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노동개혁법 직권상정, 임시국회 통과 및 금융권 성과보상제와 정부지침 일방 시행이 이뤄지면 노사정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따져보자. 노동개혁법은 8일 끝난 임시국회에서 좌초했다. 금융권의 성과보장제는 기획재정부가 시행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정부 지침은 확정은커녕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국노총이 논의를 회피한다는 게 여러 전문가의 생각이다.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결정한 파기 이유에 해당하는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정부가 낸 일반해고와 관련된 논의 시안에 대해 경영계가 반발한다.

 9·15 노사정 대타협은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사회적 대화의 한류 상품이요, 국민적 자산이다. 하루아침에 파기하겠다고 선언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휴지 조각이 되지는 않는다.

 “국민의 자산을 특정 단체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없다”는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의 말을 새겨야 한다. 그렇다고 한국노총 내 투쟁 동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투쟁을 외치면서 투쟁을 못한다면 갈 길은 뻔하다. 총선을 활용한 정치권과의 연대가 유일한 해법이다. 가뜩이나 기득권 중의 기득권이라고 힐난받는 국회와 노동계가 손잡는 걸 국민이 용납할지 의문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중국·중동발 경제위기로 아우성이다. 이럴 때일수록 약속과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