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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한 중서부 접경지역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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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경기도 연천군 중면사무소 앞 확성기.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 조치로 이날 낮 12시부터 최전방 부대 11곳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적으로 재개했다. [연천=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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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36일 만에 대북 방송을 전면 재개한 8일 확성기가 설치된 민통선 지역의 마을과 접경지역은 긴장된 분위기다.

이날 오전 9시30분쯤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 민간인 출입 통제선(민통선)에 설치된 군부대 초소. 검문을 담당하는 한 육군 병사는 “어제 오후 7시부터 태풍전망대와 평화습지원 등 민통선 관광과 민간인들의 민통선 출입이 전면 통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병사는 “오늘 오전 태풍전망대 관광을 위해 차량을 몰고 초소를 방문한 민간인들이 이번 조치로 발길을 돌렸다”고 설명했다.

연천군에서 유일하게 민통선 내에 위치한 횡산리마을의 은금홍(66) 이장은 “주민들은 마을 인근에서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관련해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안보에 필요하다고 판단해 실시하는 대북방송이라 점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주변 접경지역도 차분한 분위기였다. 인근 연천군 중면사무소내에 지하에 설치된 주민대피소도 문은 열린 상태였지만 대피소를 찾은 주민은 없었다. 대신 대피소 안에는 만일의 비상사태에 대비해 히터가 켜진 상태로 생수가 든 냉장고가 가동중이었다. TV와 남녀 화장실과 세면대도 갖춰져 있다. 이 대피소에는 지난해 8월 북한의 포격 도발과 이어진 남북 간 군사적 대치로 닷새간 주민들이 피신했던 곳이다.

주민 이광길(61·연천군 중면 삼곶리)씨는 “삼곶리 주민들은 그야말로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며 “접경지역의 남북 긴장 상황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어서 주민들은 담담한 마음으로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섭 중면장은 “중면 지역 주민들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상관없이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며 “현재는 군 부대에서 주민대피 권고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그는 “게다가 현재 북한에서 대북 방송과 관련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 대피 등과 관련한 마을 방송조차 내보내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순찰차를 몰고 면사무소로 출동해 대기중인 연천경찰서 군남파출소 이대훈 경위는 “만일 주민대피령이 내려질 경우 치안 유치를 위해 미리 출동해 대기중”이라고 말했다.

서부전선 경기도 파주 지역도 상황은 비슷했다. 평소 관광객들이 드나들던 통일대교 민통선 초소 주변은 이날 경계 강화에 나선 군인들의 모습만 보였다. 이종춘 파주시 관광진흥센터 소장은 “오늘 오전 0시부터 도라전망대·태풍전망대·제3땅굴 등 민통선내 안보관광지에 대한 관광이 전면 중단됐다”고 말했다.

민통선 마을 주민들은 관광 경기 위축을 우려하면서도 별다른 동요없이 뉴스에 귀 기울이며 평소의 모습을 유지했다.

파주 해마루촌 조봉연(60) 농촌체험마을 추진위원장은 “확성기 방송 여파로 당장 오늘부터 민통선 관광이 잠정 중단돼 생업에 타격을 입게 됐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이번 확성기 방송으로 북한에서 어떤 추가 도발을 해올지 모르는 일이어서 민통선 주민 입장에서는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대북 방송이 재개됐지만 확성기 등 방송 시설이 인접해 있는 인천시 강화군 교동면 인사리 일대는 조용했다. 상당수 주민들이 관광 버스를 타고 여행간 탓이다.

대북 방송 내용도 들려오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인사리 주민들이 확성기 이전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에 국방부는 "확성기를 철거하지 않는 대신 더 이상 방송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대북 방송용 확성기가 설치된 11곳 중 주민들이 이전을 요청한 것은 교동면 하나다. 다른 곳은 주민들이 사는 곳에서 1㎞ 이상 떨어진 곳에 확성기가 있지만 교동명은 마을에서 100m가량 떨어진 군부대 안에 확성기가 있다.

황기환(52) 인사리 이장은 "국방부에서 방송하지 않기로 약속을 한 만큼 그 말을 믿고 주민들과 단합대회를 겸해 다른 지역으로 놀러왔다"고 말했다.

서해 5도도 비슷한 분위기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된 낮 12시쯤엔 일부 주민들이 방송 뉴스를 시청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대부분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난해 북한의 기습 포격때처럼 주민 대피 통보도 없었다. 인천과 섬 지역을 오가는 10개 항로 여객선 11척도 평소와 다름없이 정상 운항했다. 꽃게 출어기가 아닌 탓에 조업에 나선 어선도 1척도 없었다. 대신 인근 앞바다에선 어구 등을 관리하는 어장관리선이 오갔다.

연평면사무소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대피소 7곳의 점검을 마친 뒤 24시간 개방 운영하고 있다. 박태원(56) 연평어촌계장은 "육지에서 볼 땐 남북관계가 나빠지면 연평도 주민들이 가장 먼저 긴장한다고 생각하는데 다들 덤덤하다"며 "오늘도 주민들 대부분이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등 평소처럼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접경지역에선 안보관광지 운영이 전면 중단됐다. 동해안 최북단 고성 통일전망대와 강원도DMZ박물관·양구 을지전망대·화천 칠성전망대·철원 평화전망대 등은 8일부터 일반인 출입을 통제했다.

통일전망대와 DMZ박물관은 이날 오전 9시쯤 일반인 관광객 40여 명을 입장시켰다. 하지만 군부대로부터 운영 중단 통보를 받고 관광객과 직원들을 곧바로 철수시켰다.

접경지 주민들은 대북방송이 시작된 이 후에도 평상시처럼 차분한 일상을 보냈다. 철원군 대마리 주민 최미주(38·여)씨는 “아직까진 특별한 움직임이 없이 평온한 상황”이라며 “주민들은 평소처럼 마을 오가며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천어축제를 개막하는 화천군은 대북방송이 관광객 감소로 이어질까 걱정하고 있다. 주민 함흥근(63)씨는 “남북관계가 불안하면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하루 빨리 이번 사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산천어축제 개막 당일 100여명의 군 장병을 지원할 계획이던 7사단은 통역 등 꼭 필요한 인원만 현장에 지원하기로 했다. 현재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전방부대 인근 지역은 군 장병의 외출외박 전면 중단되면서 한산한 상황이다.

군 당국 관계자는 “현재 정기 휴가를 제외한 군 장병의 외출외박이 전면 통제된 상태”라며 “최소한 다음 주 주말(17일)까지는 외출외박이 통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익진·최모란·박진호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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