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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없는 출판기념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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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박범계(대전 서을)의원은 오는 12일 오후 7시30분 대전 둔산동 오페라웨딩에서 북 콘서트를 연다. 이름만 바꾼 사실상의 출판 기념회다. 하지만 박 의원의 북 콘서트 장에서는 책을 구경할 수 없을 전망이다. 박 의원측이 현장에서 책을 팔지 않기로 해서다.

박 의원은 북 콘서트에서 최근 펴낸 『정·공·법』이란 책을 소개만 할 예정이다. 박 의원은 “괜히 책을 팔다가 구설에 오르기 싫다. 단지 책 내용만 소개하고 원하는 분은 서점에 가서 구입토록 안내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선거철마다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해온 출판기념회 분위기가 달라졌다. 출판기념회를 열지만 책은 팔지 않고 있다. 출판기념회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정치인도 드물어 졌다. 대부분 ‘북 콘서트’등으로 바꾸고 책 내용만 소개하고 있다. 책을 냈어도 출판기념회를 열지 않는 정치인도 많다.

지난해 12월 초 더불어민주당 노영민(59) 의원이 의원실에 출판사의 신용카드 단말기를 설치해 놓고 ‘시집 강매’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게 영향을 줬다. 또 법원이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때 찬조금 명목으로 제공한 금품은 뇌물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도 출판기념회를 준비한 정치인들을 긴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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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5일 홍익대 세종캠퍼스 아트홀에서 열린 새누리당 세종시 예비후보 김동주 변호사 출판기념회장 입구에 `책을 팔지 않고 축하금도 받지 않는다`는 안내판이 서있다.

세종시 새누리당 예비후보인 김동주 변호사(44)도 지난해 12월 5일 책 없는 출판기념회를 했다. 김 변호사는 『김동주의 동분서주』라는 책을 냈지만 출판기념회장에는 갖다 놓지 않았다. 다만 사회자가 저자 경력과 책 내용을 소개하는 정도였다.

김 예비후보는 "책 판매는 당론으로 금지됐고, 무상 제공은 선거법에 저촉된다"며 "그렇다고 책을 현장에 전시만 하면 참석자들과의 관계에서 곤혹스러운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아예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예비후보는 당시 "출판기념회 '갑질 사례'가 보도된 것을 계기로 책을 앞으로 서점 등에서 일반 판매만 한다”며 축하금도 사절했다.

출판기념회를 예약했다가 취소한 정치인도 상당수다. 또 다른 세종시 새누리당 예비후보인 박종준 전 청와대경호실 차장(53)은 당초 지난달 19일 고려대 세종캠퍼스 국제농심관에서 열기로 했던 출판기념회를 취소했다. 박 씨는 "세종시의 비전, 개인 인생 역정 등을 담아서 책으로 내려 했으나,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를 채택한 새누리당 중앙당의 당론에 따라 계획을 바꿨다"고 했다.

강원 철원-화천-양구-인제지역 예비후보인 정해룡 전 강원경찰청장도 최근 출판기념회를 포기했다. 정 예비 후보는 “책을 인쇄하고 팔지도 못해 손해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용태(서울 양천을)의원은 『청춘』이란 책을 내고 지인들에게 책을 살 것을 권유하고 있다. 김 의원은 “책 내용이 좋은데 출판기념회를 열기가 어려워 일일이 전화해서 구입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기념회를 열지 못하게 되자 예비 후보들은 페이스북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예비후보들은 대부분 주민들을 만나 유세를 하는 모습이나 명함사진 등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선거 벽보를 온라인에서 보는 것과 차이가 없다.

대전 유성의 더불어민주당 최명길 예비후보는 “현역 의원들의 무리한 정치활동으로 정치신인들이 출판기념회 조차 마음대로 열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유권자 수가 20만명이 넘는데 일일이 만나는 것은 불가능해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 등 온라인 매체는 다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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