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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돈 없다고 사람 자르면 반한 감정 부추길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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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시아 지역 비자 수수료 면제로 인한 공관 내 한시직 현지인력 해고는 졸속행정의 전형적인 사례다. 수수료 면제에 따른 수입 감소가 뻔히 보이는데도 적절한 준비가 이뤄지지 않아 애꿎은 현지 직원들이 이달 말로 직장을 잃게 됐다.

정부가 중국인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 비자 수수료 면제를 연장하기로 한 것은 경제난 타개 차원의 고육지책으로 볼 수 있다. 한국 경제의 견인차였던 전자·자동차·철강·조선 등 주요 산업의 경쟁력이 최근 들어 눈에 띄게 약화했다. 이로 인해 올해도 외화 벌이가 시원치 않을 게 틀림없는 터라 이번 조치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방향이 맞는다고 다가 아니다. 부작용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으면 올바른 조치라 할 수 없다. 이번 사태로 빚어질 후유증은 여럿이다. 우선 현지 공관 창구에서 빚어질 혼란이 걱정스럽다. 한 해 600만 명 이상인 중국인 방문객에게 비자를 내주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베이징 대사관의 경우 현지인력 한 명이 연간 2만2000건을 처리한다고 한다. 이런 직원들을 한꺼번에 해고한다면 업무 차질은 불 보듯 뻔하다. 비자 발급에 소요되는 시간이 갑자기 늘어날 공산도 있다. 더욱이 불법 체류 위험이 높은 비자 신청자나 조선족으로 위장한 북한 공작원 등도 가려내야 한다. 일손이 부족해지면 이처럼 민감한 업무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불과 한 달 전에 통보한 뒤 현지인력들을 한꺼번에 내보내는 건 도의적으로도 옳지 않다. 사전 통보 뒤 임시직 해고가 물론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몇 년씩 일해 온 직원을 불가피한 사정도 아닌 행정 편의상의 이유로 쫓아내는 건 온당치 않다. 이렇게 내쫓긴 현지인들이 한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리 없다. 자칫 반한 감정만 부추기는 꼴이 된다.

 지금이라도 주무부처인 외교부는 적절한 대안을 내놔야 한다. 그저 돈이 없으니 사람을 자르겠다는 건 득보다 실이 많은 잘못된 임기응변이다. 지금이라도 관련 부처가 의논해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