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손바닥처럼 뒤집히는 1심 판결, 국민은 괴롭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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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법원 판결은 개인이나 집단 간의 분쟁을 종결짓고 형사사법의 결론을 내는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1심 판결이 2심, 3심에서 뒤집히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오히려 새로운 분쟁들을 촉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법원을 향한 국민의 신뢰는 낮아지고 당사자들이 짊어져야 할 소송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한국 법원에서 1심은 2심과 3심으로 가는 관문일 뿐이다. “진짜 승부는 2심부터”라는 말이 법조계에 횡행하고 있을 정도다. 이런 현실은 통계(2014년 기준)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민사 본안 사건의 경우 1심 판결이 2심에 가면 24.2% 사건의 결론이 뒤바뀐다. 형사사건은 더 심하다. 고등법원의 1심 합의부 판결 파기율은 42.5%였다. 이런 판국이니 사건 당사자들로선 불복해 한두 번 더 판단을 받아보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민사 합의 사건 항소율은 42.1%, 형사 합의 사건 항소율은 66.8%다. 그 연쇄 효과로 대법원에 한 해 사건 4만 건이 몰리며 ‘재판은 삼세판’이란 고비용 구조를 심화하고 있다.

 문제는 1심 재판에서 충실한 심리가 이뤄지지 않는 데 있다. 1심에서 모든 관련 증거를 충분히 다루고 당사자들에게 말할 기회를 폭넓게 보장한다면 그 결론을 다시 2심에서 뒤집는 상황이 되풀이되진 않을 것이다. 또 그렇게 나온 1심 판결은 심각한 문제가 없는 한 2심에서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 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그제 “사법부가 가장 역점을 둬야 하는 재판은 1심 재판”이라고 강조한 것은 정확한 진단이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은 2014년 전체 단독재판장의 50% 이상을 부장판사로 배치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지난해엔 한국형 디스커버리(Discovery·소송 전 증거조사) 제도 등을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양 대법원장의 지적처럼 1심 판사들이 ‘최종심 법관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내가 오판하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경각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한 국민들이 2, 3년씩 재판에 발목 잡히고 전관(前官) 출신 변호사들 배만 불리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