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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생존’만 외쳐서는 생존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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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글로벌 경기침체에 안일하게 대응하면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구본무 LG회장) “기존의 전략으론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 됐다.”(권오준 포스코 회장) 신년벽두부터 대기업 총수들이 붙잡은 화두는 ‘생존’이었다. 총수들의 신년사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위기’였다. 경영계획과 관련해선 부족한 부분은 과감히 버리겠다고 밝혔다. 매년 ‘공격경영’과 ‘성장’을 주문했던 기업 총수들이 위기감을 표현하고, 방어적이고 축소지향적 경영을 표방한 것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는 판매목표를 전년에 비해 하향조정했다. 중공업계도 내실을 강조하며 매출 목표를 낮췄다.

 이는 대기업이 우리 경제를 얼마나 비관적으로 전망하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올 산업 전망도 좋은 소식은 거의 없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현 경제상황이 닷컴버블붕괴(2000년)와 신용카드대란(2003년) 당시와 유사하다고 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절대수요의 부족, 건축시장의 초과공급, 리딩산업의 실종, 아시아 리스크의 대두 등이 나타나며 경기회복이 지연될 것이라고 올 산업을 전망했다. 좀비기업 구조조정 등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중국 증시의 연이은 폭락과 이란-사우디아라비아의 긴장 등 대외적 여건도 좋지 않다. 나라 안팎 어디에도 기댈 데가 없다. 그나마 삼성·현대자동차 등 일부 대기업들이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겠다고 한 것이 기대해볼 만한 대목이다.

 한국 산업이 경쟁력을 잃은 데는 그동안 기업들이 혁신보다는 편안한 사업에 안주하고 정부의 부양책에 기댄 채 이윤이나 따먹는 지대추구형(rent seeking) 경영에 머물렀던 업보도 크다. 올해 경제적 어려움은 1997년 외환위기처럼 갑자기 닥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예고된 상황이어서 다행히 준비할 시간이 있다.

 우선 전문가들은 이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혁신과 역동적 도전 정신으로 무장하고 ‘기업가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꼽는다. 한국은 세계기업가정신발전기구가 발표한 글로벌기업가정신지수에서 120개국 중 32위(2014년)를 기록해 경제규모(13위)에 비해 기업가정신이 뒤처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업가 정신은 위기에서도 빛을 발휘한다. 한미약품이 직원들에게 일인당 4000만원 상당의 주식을 나눠주기로 한 것도 혁신과 도전을 멈추지 않은 기업가정신 덕분이었다.

 또 기업들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회적 책임과 공생을 고민해야 한다. 90년대 외환위기 당시 인원부터 우선 정리한 구조조정으로 가족해체와 함께 중산층이 붕괴했고, 그 여파는 소비부진으로 이어졌다. 당시 기업 위기를 근로자에게 쉽게 전가했던 기억은 근로자들의 기업에 대한 신뢰상실로 이어져 노동개혁을 어렵게 하는 등 악순환을 만들었다. 올해는 소비절벽이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기업도 과거와 다른 자구노력을 고민하고 일정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감원을 회피하는 방식의 새로운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