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급 과잉에 미분양 속출…얼어붙은 부산 집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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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분양가 이하 급매물이 나와도 거들떠 보는 사람이 없어요."

11일 오전 부산시 신흥 부촌으로 꼽히는 해운대구 우동 일대 한 부동산 중개업소. 이곳 사장은 "2~3년 전 만 해도 아파트나 분양권을 매입하는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요즘은 파리만 날린다"고 한숨을 쉬었다. 또 다른 중개업자는"최근 한 달간 거래를 한 건도 못했다. 이런 추세라면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전했다.

부산 아파트 시장이 휘청거리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아파트 공급이 넘치고 있지만 지역 경제 불황으로 수요가 끊긴 때문이다. 미분양이 속출하면서 업체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아파트 매매값과 전셋값도 동반 약세다. 이런 판에 많은 주택업체들은 그동안 연기했던 분양 물량을 올해 대거 쏟아낸다. 부산 주택시장이 소화불량에 단단히 걸릴 것이라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중앙일보조인스랜드와 부동산정보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 아파트값은 2004년 말 대비 1.15% 오르는 데 그쳤다. 6개 광역시 평균 상승률 3.54%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다. 부산 전셋값은 지난해 0.98% 떨어졌다. 새해 들어서도 시장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주 부산 아파트 매매값은 2주전보다 0.04%,전셋값은 0.01% 각각 떨어졌다.

부산 아파트 시장이 맥을 못 추는 것은 입주량이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이다. 2001~2003년만 해도 1만 가구 선에 그쳤던 입주 물량이 2004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올해는 3만1927가구에 이른다.

부산 진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살던 집을 싸게 내놓으면서 값이 약세를 보인다"며 "입주 물량 충격이 본격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양도세 등 각종 세금 중과로 서울 등 외지 사람의 투자수요가 끊긴 것도 집값이 약세를 보이는 또 다른 이유다.

미분양도 넘쳐난다. 지난해 11월 말 현재 부산지역 미분양 물량은 5438가구로 전국(5만1077가구)의 10.6%에 이른다. 광역시 가운데 가장 많다. 이 가운데 입주한 뒤에도 주인을 만나지 못한 미분양만 해도 353가구다. 대형 주택업체 관계자는 "새 아파트 분양가가 기존 아파트보다 비싸기 때문에 갈아타기 수요도 많지 않은 게 주요 요인"이라고 말했다.

금정구 D아파트의 경우 입주한 지 1년이 다 돼 가는데도 전체 분양물량의 10%가량이 주인을 못 찾고 있다. 업체 측은 미분양을 팔기 위해 잔금 4000만~8000만원에 대해 2년간 대출금 이자를 면제해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일부 미분양 단지에선 암암리에 분양가에서 5~10% 정도 깎아주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대의 김모 공인중개사는 "일부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자)들이 울산.마산.진주 등 인근 지역으로 옮기고 있다"며 " 분양시장이 그만큼 위축돼 있다는 방증"이라고 전했다.

주택업계에선 부산지역 공급과잉 후유증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올해 부산에선 지난해보다 3배 이상 늘어난 4만2386가구가 분양을 대기하고 있다. 상반기만 해도 정관신도시에서 8200여 가구, 신호.명지지구에서 9000여 가구가 쏟아질 예정이다.

세중코리아 김학권 사장은 "해운대구 등 일부 지역과 차별화한 일부 주상복합아파트를 제외하곤 분양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부산 주택시장은 공급이 가장 많은 올해가 고비"라고 말했다.

부산=박원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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