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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금융허브 앞당기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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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해 추진된 정책만 해도 10여 가지가 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6월 1차 로드맵을 대폭 수정한 것이다. 당초 2020년까지 목표로 잡았던 금융허브 추진 일정을 2015년으로 앞당기고, 정책 추진 초기에 자산운용업에 치중하던 계획을 채권.파생상품.기업구조 조정 등을 선도산업으로 동시에 발전시키기로 한 것이다.

이런 의욕적인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7월 외국환거래 규정을 대폭 완화해 국내 기업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해외 금융과 실물자산에 투자할 길을 열어줬다. 12월에는 아직 남아 있는 외국환 자본 거래 규제를 올해부터 신고제로 전환하기로 발표했다. 11월에는 우리나라 자본시장 관련 업무가 증권업.선물업.자산운용업 등으로 세분돼 있는 점을 감안해 올 상반기 중에 새로운 자본시장통합법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금융상품의 개념을 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로 바꿔 신상품 개발을 촉진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또한 금융시장의 국제화를 위해 올해부터 외국 기업도 국내 기업과 동일한 조건으로 국내 시장에 상장할 수 있도록 했고, 외국 회계법인의 국내사무소 설치도 내년에 허용하기로 했다. 채권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올해부터 20년 만기 국고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이런 여러 정책을 짧은 시간에 추진했다는 것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2015년까지 국제 수준의 금융허브로 만들기 위해서는 남아 있는 과제도 많다.

우선 침체돼 있는 회사채 시장을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공급 및 수요 기반을 동시에 확충하고, 특히 아직도 투자 분야에 남아 있는 규제를 철폐하고 채권 이자소득에 대한 세제 혜택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외국 기업의 국내 상장을 촉진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지만 이들에게 국문 공시와 보고서를 요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영어가 이미 세계 비즈니스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마당에 국문 사용을 고집하는 것은 한국 금융시장의 국제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째,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해 정부 주도의 금융전문대학원 설립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해외에서 양성된 전문 인력의 국내 유입을 권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 이민법을 서둘러 개정해야 할 것이다.

또 국내 법인은 아직껏 국제금융거래에 필요한 전문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는 취약하다. 따라서 외국 회계법인의 국내 영업 허용은 물론 외국 법률법인의 국내 영업도 허용해야 할 것이다. 외국 법률사무소가 국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면 우리의 금융감독 및 규제의 질적 수준도 크게 향상되리라고 본다.

현재 외국 경영자에 관해서는 개인소득세와 법인세제 문제를 조세특례제한법으로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편법이다. 경쟁국에 비해 누진율이 높은 우리나라의 개인소득세와 법인세제를 개선해야 한다. 높은 누진세율은 외국 기업 및 금융 전문가들의 한국 진출을 기피하게 만든다. 또 소득 분배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국내 기업 및 개인의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효율적인 금융허브 추진을 위해 정부는 분야별로 계량화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그런 목표가 있으면 진척상황에 대한 구체적 평가가 쉽다. 그래야 정책 실무자들도 필요한 정책을 적기에 능동적으로 추진해 금융허브 구축을 한시바삐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정부가 금융허브 건설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본다. 그러나 그 노력이 결실을 맺으려면 올해는 더 많은 개혁과 혁신이 필요한 시기다.

김기환 서울파이낸셜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