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건 붙잡고 울먹인 김정은 “함께 손잡고 할 일 많은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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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9일 숨진 김양건 대남 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을 조문하며 울먹이고 있다. 뒤로 김기남 당 비서(왼쪽)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의 모습이 보인다. 장의위원회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최용해 당 비서는 이날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31일자 1면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울먹이는 모습을 크게 실었다. 그의 최측근으로 대남 업무를 총괄했던 고(故) 김양건 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을 조문했다는 내용의 기사와 함께다. 사진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얼굴을 드러낸 김양건의 시신 어깨에 손을 얹고 애통해했다. 노동신문은 “싸늘하게 식은 혁명 동지의 시신에 손을 얹고 오래도록 격한 심정을 누르지 못했다”는 설명을 붙였다.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여 예를 갖춘 사진도 함께 실렸다.

김 위원장, 90도 허리 숙여 예우
‘사람 아끼는 지도자’ 이미지
황병서 동행 … 최용해는 안 보여
타살설 속 정부 “단순사고 같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31일 일제히 김정은의 김양건 조문 소식을 전하며 갖은 표현을 동원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가장 가까운 전우를 잃은 커다란 슬픔에 잠겼다”며 “당과 조국은 (김양건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지난 11월 12일 치러진 이을설 인민군 원수 장례식에서도 장갑차를 동원해 운구하도록 지시하고 장지까지 직접 찾아가 무릎을 굽히고 흙을 뿌리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은이 권력 엘리트층에게는 숙청 등 공포정치를 하면서도 주민들에게는 ‘사람을 아끼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주기 위한 ‘애민 이미지’의 일환”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실제 김정은과 김양건의 관계가 각별했기 때문에 진정성이 엿보인다는 분석도 있다. 김양건이 대남 업무를 총괄했기 때문에 김정은이 “함께 손잡고 해야 할 많은 일을 앞에 두고, 간다는 말도 없이 야속하게 떠나갔다”고 애도했다는 것이다. 동국대 김용현(북한학) 교수는 “김양건이 단순한 정책 집행자가 아니라 함께 대남 정책을 꾸려 가는 파트너였다는 의미”라며 “앞으로 대남 정책의 큰 그림을 함께 그려 갈 파트너가 사라졌음을 아쉬워하는 대목”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은 이날 김양건의 시신 사진도 공개했다. 사진에서 김양건은 상처 없는 얼굴로 눈을 감은 채 관에 안치된 모습이었다. 푸른색 넥타이를 한 양복 차림으로 가슴까지는 붉은 천이 덮여 있었다.

 이날 김양건의 빈소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기남·최태복·곽범기·오수용·김평해 당 비서, 조연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동행했다. 앞서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 올라 복권된 것으로 관측된 최용해는 동행자 명단엔 포함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정부 소식통은 “최용해를 공식석상까지 등장시키기엔 시기상조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73세로 건강했던 김양건의 사망과 관련해 일각에선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의 배후설 등 타살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 소식통은 “단순 교통사고인 것 같다”며 “김양건이 신의주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교통사고가 났다는 첩보가 있다. 새벽에 많이 다니는 군용 트럭과 추돌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북한이 밝힌 김양건의 사망 시각은 29일 오전 6시15분이었다. 이 소식통은 “김양건이 합리적 온건파인 데다 특별한 이권 사업에 개입한 적이 없어 계파 간 갈등에 휘말릴 가능성이 적다”며 단순 사고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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