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에 살다] (11) '동대 호랑이' 도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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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그들은 토왕폭 하단 얼음동굴로 들어간 뒤 왼쪽의 고드름지대를 가로질러 토왕폭 왼쪽 암벽에 있는 약간 턱진 테라스로 올라갔다. 요즘 '동대 테라스'로 불리는 곳이다. '동국대의 호랑이' 도창호는 이동훈의 지원을 믿고 동대 테라스에서 빠져나와 빙벽 한가운데로 과감히 들어섰다.

그곳에서도 토왕폭 하단의 빙벽은 수직으로 50m 이상 뻗어 있었다. 도창호는 3년 전의 송준호처럼 목숨까지 내건 하얀 얼음기둥에 아이젠의 앞이빨을 힘차게 내질렀다. 그렇게 빙벽 한가운데로 곧장 오른 도창호와 이동훈은 1월 14일 오후 하단 정수리에 올랐다. 하단 등반에만 7박8일이 걸린 긴 투쟁이었다.

토왕폭 하단의 하얀 허리에 첫길을 낼 때 그들은 아침마다 아이젠 밴드를 묶으며 '왜 이 짓을 해야 하는가'하고 회의도 했지만 환상의 얼음기둥에 목숨을 거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왜?'

초등에 성공해 빙벽의 꼭대기에 깃발을 꽂는다 하더라도 그 깃발이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 무용한 정열!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곧바로 전염되는 맹목적인 정열이야말로 젊음의 특권이다. 산사람들의 가슴 속에 가득찬 산을 향한 열정의 에너지는 행위의 동기를 묻는 의구심마저 불태워 버린다. 도창호와 이동훈이 등반을 마무리짓는 날, 서울에서 달려온 이인정(현 한국등산학교장)씨가 두 대원의 등반 자일을 손수 묶어주는 의식을 베풀었다.

그 선배들의 열정을 가슴으로 기억했기에 도창호와 이동훈은 이듬해 상단까지 초등, 진정한 '토왕폭의 사나이'로 태어나길 간절히 바랐다. 그런 까닭에 동국대팀은 비록 크로니팀에 선수를 뺏겼다 하더라도 그냥 돌아설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크로니팀의 등반 상황을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박영배씨를 대장으로 김태성.남순철.서정학.이건호.송병민.임상섭 대원으로 짜인 크로니산악회의 토왕폭 등반대는 76년 12월 29일 서울 동대문 고속버스터미널을 출발했다.

크로니팀은 76년 1월 토왕폭 정찰등반 이후 토왕폭만을 생각했다. 그들은 어센트산악회의 김재근씨에게서 얻은 '바르트 혹' 아이스 하켄을 서울 모래내 금강대장간의 김수길씨에게 의뢰해 같은 모형으로 23개, 그보다 조금 작게 변형시킨 소형의 바르트 혹을 10개 제작했다. 77년 첫날부터 토왕폭 하단을 공략한 크로니팀은 76년의 동국대 루트와는 달리 동굴로 들어가지 않고 왼쪽으로 바로 올라 붙는 루트를 택했다.

1월 3일 오후 5시40분 박대장은 송병민 대원과 함께 하단 정상에 올라섰다. 한해 전 동국대팀이 7박8일 걸렸던 하단 등정을 2박3일 만에 끝낸 것이다.

박인식 <소설가.前 사람과 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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