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영화천국] '0순위 캐스팅' 성공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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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캐스팅이 안돼 못 만드는 영화가 허다하다고 들었다. 0순위로 찍은 배우를 캐스팅한 영화는 없는가.

A: 영화 기획 얘기가 들려오다가 그 후 무소식이면 잘 만들고 있다는 희소식이기보다 배우 섭외가 안돼 엎었다더라 하는 비보(悲報)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지난 해부터 충무로에 "요즘 영화 크랭크 인(촬영 개시)은 감독이 하는 게 아니라 캐스팅이 한다"는 유행어가 돌기도 했다.

반면 처음부터 홍길동(대개 충무로에서 너도 나도 잡으려는 인기 배우이기 쉽다)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바로 그 홍길동을 잡은 행운의 사례도 종종 있다.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은 "각본을 쓸 때부터 박두만 형사는 송강호 말고는 없었다"고 한다. 만약 송강호가 출연을 거절했다면? "송강호 없이는 '살인의 추억'도 없었을 것"이라는 게 봉감독의 비장한 후일담이니, 하마터면 5백만 관객 동원은커녕 영화가 빛도 보지 못할 뻔 했다.

지난 주말 개봉한 '첫사랑 사수궐기대회'도 애초 오종록 감독이 "태현이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고 했으니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경우다. 드라마 PD 출신인 오감독은 '해피 투게더''줄리엣의 남자'로 차태현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또 있다. 시나리오 작가로 이름을 날리던 박정우 감독의 데뷔작 '바람의 전설'에 출연하기로 한 이성재. 그도 박감독이 각본을 쓴 '주유소 습격사건'때부터 "박감독의 첫 작품에는 무조건 출연한다"고 한 약속을 지킨 경우다.

이렇듯 될성부른 작품을 눈 밝은 배우가 먼저 알아보거나(배우는 시력과 실력 다 좋아야 한다!), 혈연.지연.학연 등 '줄'을 잡지 못하면 일단 '0순위 캐스팅'은 힘들다고 봐야 한다. 한 제작자는 "누구나 영화를 기획할 때는 장동건.정우성.(지금은 은퇴한) 심은하를 꿈꾼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니 감독이나 제작자가 배우에게 읍소 작전을 펼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배우에게 보내는 시나리오 겉장에 '당신이 무심코 거절한 영화 한 편이 감독에겐 엄청난 결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이라도 붙이고픈 심정일 게다.

최근 충무로에 눈물의 캐스팅 성공 사례가 있었으니 바로 '낭만자객'이라는 영화를 촬영 중인 윤제균 감독이다.

주연 김민종을 데려오기 위해 그가 택한 작전은 매일 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날리기. 결국 숱한 메시지 중 "민종아, 사랑해!"라는 결정타에 김민종이 KO되고 말았다는 후문이다. 윤감독님, 당신을 '10일 안에 원하는 배우 캐스팅하는 법'의 저자로 임명합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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